"한국 정부 나서야 추가 살해 막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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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본지의 현지 통신원 알리 아부하산(가명)은 31일에도 탈레반 지도부를 전화로 접촉하고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 현지 상황을 담은 2신을 보내왔다. 그는 탈레반 지도부와의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특종을 한 적이 있는 탈레반 전문가다. 아부하산은 이 지역(가즈니주) 탈레반 최고지도자 겸 사령관인 물라 사비르가 "아프간 정부가 수감 중인 동료 포로를 석방하거나 한국 정부가 당장 직접 협상에 나서야만 추가 살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그가 취재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탈레반 사령관과의 통화 내용="아프간 정부를 굴복시키기 위해 인질을 또 살해했다. 그들은 우리를 계속 코너로 몰고 있다."

사비르는 31일 전화 통화에서 심씨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현재 탈레반 지도부는 아프간 정부 협상팀에 심한 불신감을 갖고 있다. 사비르는 "우리 동료를 석방하든지, 아니면 당장 아프간 정부를 배제하고 한국 정부가 직접 협상하러 오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질들의 추가 살해를 각오하라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인질 한꺼번에 다 죽이지 않을 것"=사비르는 "아프간 정부는 우리가 인질을 전부 이른 시간 내 살해하도록 해 궁지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공격했다. 이어 "우리는 아프간 정부의 그런 의도를 알기 때문에 인질들을 한꺼번에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 죽일 경우 그들도 협상카드가 없어진다. 그러면서도 탈레반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언제든 인질들을 순차적으로 죽이겠다고 밝혔다.

"남자들을 먼저 죽인 뒤 여성들도 죽이겠다"고 위협한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의 말과는 달리 '슈라(부족 원로회의)'에서는 아직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온건파는 한국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기만 하면 여성들을 풀어 줄 수도 있다는 입장인 데 비해 강경파는 반드시 동료 수감자 석방을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협상 시한이 1일 오후 4시30분으로 연장된 것에 대해 사비르는 "원로회의 결과 그렇게 결정됐다"고 확인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그들의 농간에 놀아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포로 석방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협상 시한 연장을 둘러싼 논란과 돈 문제에서 아프간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일 한국 정부 협상팀이 몸값을 아프간 관리에게 건넸다면 엉뚱한 곳에 전달됐거나 '배달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아프간 정부 협상팀 중 일부가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도 있다. 탈레반 지도부는 "아프간 정부가 인질들과 직접 관계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본지 통신원의 조언=한국 정부는 몸값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명분을 앞세우는 탈레반 지도부는 돈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인질 사태 때마다 돈을 받되 드러나지 않게 받아 왔다.

내 판단으로는 한국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지 않는 한 추가 살인을 막을 수 없어 보인다. 물론 직접 협상도 위험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카드가 없는 한국 정부가 탈레반이 불신하는 아프간 정부에 무작정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정리=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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