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사막거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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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호 30면

사막거북
정끝별

사막에서 물을 잃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가물에 콩 나듯 사막에서 만나는 풀이나 선인장에게 병아리 눈물만큼의 물을 얻어 몸속에 모았다가 위험에 빠지면 그마저도 다 버린다

살기 위해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나도 슬픔에 빠지면 몸속에 모았던 물을 다 비워낸다 쏟아내고서야 살아남았던 진화의 습관이다

어떤 것은 버렸을 때만 가질 수 있고
어떤 것은 비워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쏟아내고서야 단단해지는 것들의 다른 이름은?

돌처럼 단단해진 두 발을 본 적이 있다
피딱지가 엉겨 있었다

어느 거리였을까
어느 밥벌이 전쟁터였을까『모래는 뭐래』 (창비 2023)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여립니다. 두려움을 느끼면 움츠러듭니다. 바다부터 사막에 이르기까지 분포하지만 동시에 대부분 멸종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난류와 한류를 만나며 떠돌다가 결국 태어난 자리로 되돌아오는 습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백이 떠났을 때 돌아오는 것은 한둘이 될까 말까 합니다. 바로 거북이. 이 거북이 대신 마음이라는 낱말을 넣어도 뜻이 통합니다.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여린 것. 두려움 앞에서 움츠러드는 것. 삶의 난류와 한류를 떠돌아야 하는 것. 그러다 진정한 마음이 거의 사라진 것. 떠난 마음이 백이라고 했을 때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한둘이 될까 말까 하는 것. 그럼에도 새로 먹어야 하는 것.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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