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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아카시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8호 30면

아카시아
김사인

먼 별에서 향기는 오나
그 별에서 두 마리 순한 짐승으로
우리 뒹굴던 날이 있기는 했나
나는 기억 안 나네
아카시아
허기진 이마여
정맥이 파르랗던 손등
두고 온 고향의 막내누이여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오월이면 유난히 자주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습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하고 시작되는 동요. 마을의 어귀, 동구(洞口)라는 뜻을 몰랐던 어릴 적에는 ‘동구 밭 과수원길’이라고 따라 불렀습니다. 동구네 밭 정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카시아가 아닌 아까시나무가 정확한 이름이라는 것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황폐한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식재된 지 약 오십 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고사하는데 그동안 숱한 벌들을 기르고 딛고 있는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놓습니다. 오월에는 창문을 더 자주 열어볼 생각입니다. 어느 먼 곳에서부터 아까시꽃의 향기가 풍겨올지도 모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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