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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했다고 "살만한가봐?"…카메라로 '피해자다움' 깬 누나 [세월호 3654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故) 박성호 군의 큰 누나인 박보나씨가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초지동 '416꿈숲학교' 복도에 서 있다. 이보람 기자

고(故) 박성호 군의 큰 누나인 박보나씨가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초지동 '416꿈숲학교' 복도에 서 있다. 이보람 기자

세월호 3654일

2014년 4월 16일에서 3654일, 만 10년이 흘렀다. 기억 속 세월호는 여전히 기울어진 선체의 위태로운 모습 그대로다. 국민 생명이 최우선인 안전한 나라는 아직 요원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남겨진 이들은 슬픔의 심연(深淵)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304명을 가슴에 묻고 새긴 채 안간힘을 다해 살아냈다. 마음 치유사로 다시 선 생존 단원고 학생, 기간제 교사 딸의 차별을 철폐하고 순직을 인정받은 아버지, 다른 재난 현장을 찾아 봉사하는 어머니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사죄를 끌어낸 목사…. 이들에게 지난 10년의 의미를 물었다.

10년 전 그날, 전남 진도체육관 1층에서 박보나(30)씨는 동생의 죽음이 생중계되는 ‘비현실’을 경험했다. 희생자 명단이 확인될때마다 무너진 이들이 오열하고 망연자실해하는 표정까지 카메라에 기록됐다. 안산 단원고 2학년 5반 박성호군의 누나인 박씨는 한동안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듣기만해도 움츠러드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2017년 박씨는 직접 카메라를 잡았다.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의 도움으로 다른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여 사진을 공부하고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세월호 5주기였던 2019년엔 이들과 함께 ‘나와 우리의 시간’이란 사진전을 열어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 형제·자매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보여줬다. 이듬해 온라인으로 열린 두 번째 전시회에도 참여했다. 2회 전시회 주제는 ‘당당한 피해자’였다. 박씨가 대표작으로 낸 사진은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는 유가족의 뒷모습을 담은 ‘머리카락_미용실’이었다.

“참사 몇 달 쯤 지났을 때, 미용실에서 뿌리 염색을 했어요. 이후 뿌리염색을 한 제 사진이 실린 기사를 보고 ‘이제 좀 살만한가봐’ ‘보상금 받아서 이렇게 쓰는구나’ 같은 댓글이 달렸죠. 피해자는 마냥 슬퍼하며 일상을 살면 안 되는 건가 충격이었죠.”

지난 2020년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준비한 세월호 6주기 추념전에서 박보나 씨가 대표작으로 정한 작품. 파마 중인 유가족의 뒷모습. 사진 박보나

지난 2020년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준비한 세월호 6주기 추념전에서 박보나 씨가 대표작으로 정한 작품. 파마 중인 유가족의 뒷모습. 사진 박보나

2020년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준비한 세월호 6주기 추념전에서 제출된 박보나씨 작품. 사진 박보나

2020년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준비한 세월호 6주기 추념전에서 제출된 박보나씨 작품. 사진 박보나

파마하는 유족의 모습은 박씨가 깨고 싶은 ‘피해자다움’이 됐다. 그는 “언론에서 저희를 많이 비췄는데, 피해자는 울고 쓰러지고 슬픔에 잠겨 있어야만 하는 이미지로 규정되는 것 같았다”며 “피해자가 어떤 요구를 한다고 그걸 불순하다며 낙인 찍는 걸 보면서 피해자답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했다.

그 과정에 유족이 아닌 자신의 모습도 잃었다. 그는 “카메라를 들이대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될 지 하나하나 검열하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내가 세월호 유가족인 걸 밝힌 뒤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고 혹시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생각했다. 피해자들은 일상에서까지 계속 위축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고 찍히는 게 왜 힘들었는지 마주하면서 조금은 극복이 됐다. 자신들이 찍은 사진에서 언론이 다루지 않는 피해자들의 다양한 일상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다.

박씨는 이태원 참사와 오송 참사를 겪은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들 몫까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당당한 피해자로 살면 좋겠다”며 “나를 잃으면 먼저 떠나간 가족에 대한 기억도, 사건에 대한 기억도 잃게 될 것 같다.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같이 잘 견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365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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