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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2000포기 나눔…딸 떠난 엄마 "제가 받은 위로 나눕니다" [세월호 3654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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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고(故) 조은정 양 어머니인 박정화 4.16가족나눔봉사단장이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초지동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이보람 기자

고(故) 조은정 양 어머니인 박정화 4.16가족나눔봉사단장이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초지동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이보람 기자

세월호 3654일


2014년 4월 16일에서 3654일, 만 10년이 흘렀다. 기억 속 세월호는 여전히 기울어진 선체 위태로운 모습 그대로다. 국민 생명이 최우선인 안전한 나라는 아직 요원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남겨진 이들은 슬픔의 심연(深淵)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304명을 가슴에 묻고 새긴 채 안간힘을 다해 살아냈다. 마음 치유사로 다시 선 생존 단원고 학생, 기간제 교사 딸의 차별을 철폐하고 순직을 인정받은 아버지, 다른 재난 현장을 찾아 봉사하는 어머니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사죄를 끌어낸 목사…. 이들에게 지난 10년의 의미를 물었다.

 그날 딸을 떠나보낸 지 1년도 채 안 된 2014년 겨울 어머니는 서울 성북구의 달동네에서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연탄을 날랐다. 단원고 2학년 9반인 조은정양의 어머니 박정화(56)씨다. 박씨는 지금은 4·16가족나눔봉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지만 처음엔 딸을 잃은 지 얼마 안 돼 봉사를 다니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고 한다.

12일 4·16 꿈숲학교에서 만난 박씨는 “세월호 참사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씨도 참사 전까지 딸 은정양과 한 살 많은 오빠를 키우며 버섯요리 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엄마였다. 참사 첫해부터 겨울마다 연탄을 배달하고 배추 2000 포기로 김장을 해서 나누는 봉사를 시작했다. 수해나 화재 같은 재해를 입은 피해자를 찾아 위로하기도 한다.

나 홀로 ‘조용한 봉사’를 시작한지 4년쯤 했을 때 단원고 학부모 20여명과 정식으로 봉사단을 꾸리기로 했다. 슬픔과 분노·억울함에 갇혀살던 희생자 부모들이 차츰 주변에서 위로하던 봉사자들의 존재를 깨달으면서였다.

“진도체육관, 팽목항, 안산 분향소까지 4년 넘게 요리해주고 청소해준 사람들이 있었어요. 같이 마음 아파하고 보듬어준 순간마다 큰 위로를 받았어요.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다른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보기로 한 거예요.”

박정화 단장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4.16가족나눔봉사단 단원들이 지난해 김장김치나눔봉사에서 직접 만든 김치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박정화 씨 제공

박정화 단장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4.16가족나눔봉사단 단원들이 지난해 김장김치나눔봉사에서 직접 만든 김치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박정화 씨 제공

박씨를 비롯한 단원고 학부모들은 10년간 시민들의 응원과 경멸을 모두 경험했다. 세월호란 단어가 어느새 누군가에겐 지겨운 말이 됐다. 박씨는 “세월호 엄마들이라고 양파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며 “봉사활동 하러 왔다고 하면 차츰 마음이 풀리고 반갑게 맞아줬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삶을 버텨낼 원동력이기도 했다. 박씨는 “2022년 3월 울진 산불 현장에 갔더니 한 사람이 ‘당신도 아픈데 다른 사람을 도와주러 왔냐’며 등을 쓰다듬어줬다”며 “힘들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건 견딜 수 있지만 어린아이들이 희생되는 사건·사고는 여전히 마주하기 힘들다. 박씨는 지난해 3월 안산 단원구 선부동 다세대주택에서 불이 나 다문화 가정 4남매가 숨진 사건을 떠올렸다. 화재 원인은 전기 합선이었다. 봉사단은 이후 다문화가정마다 소화기 등을 나눠줬다.

박씨는 최근 재난안전전문가 중급과정을 수료한 뒤 전국을 돌며 안전간담회를 연다. 간담회에서 딸 은정이 또래 청년들을 만날 때면 그리움도 짙어졌다. 그는 “우리 딸이 희생되지 않았으면 아마 안 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며 “이런 예쁜 아이들이 좀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월호 365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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