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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편지 보냈다…이준석 선장 참회 끌어낸 길 위의 목사 [세월호 3654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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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월호 참사 이후 가족들과 함께 한 장헌권(67)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가 13일 오후 옛 전남도청(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세월호 10주기 추모 조형물 앞에 서 있다. 손성배 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 가족들과 함께 한 장헌권(67)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가 13일 오후 옛 전남도청(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세월호 10주기 추모 조형물 앞에 서 있다. 손성배 기자

세월호 3654일

2014년 4월 16일에서 3654일, 만 10년이 흘렀다. 기억 속 세월호는 여전히 기울어진 선체 위태로운 모습 그대로다. 국민 생명이 최우선인 안전한 나라는 아직 요원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남겨진 이들은 슬픔의 심연(深淵)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304명을 가슴에 묻고 새긴 채 안간힘을 다해 살아냈다. 마음 치유사로 다시 선 생존 단원고 학생, 기간제 교사 딸의 차별을 철폐하고 순직을 인정받은 아버지, 다른 재난 현장을 찾아 봉사하는 어머니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사죄를 끌어낸 목사…. 이들에게 지난 10년의 의미를 물었다.

장헌권(67)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는 세월호 유족을 제외하곤 선장과 선원 등 참사 책임자 재판을 빠짐없이 방청한 유일한 사람이다. 참사 두 달 뒤인 2014년 6월 10일부터 광주지법에서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법정을 찾았다. 지난 13일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시민분향소에서 만난 장 목사는 “처음 재판을 보러 간 날 절규하는 단원고 유족의 모습을 보고 끝까지 곁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해 10월 장 목사는 광주교도소에 있는 선원 15명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그날 벌어진 일을 상세히 설명하라고 촉구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원인 규명 작업인 셈이었다. 2018년엔 무기징역형을 확정받고 순천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준석 선장(79)과도 다섯 차례에 걸쳐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 선장은 편지에서 “유족에게 깊이 사죄하고 싶다. 죄책감 속에 사로잡혀 자책하면서도 지난날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속죄했다. 이런 내용을 전해 들은 유족 중엔 “범죄자의 참회를 끌어내서 뭐하냐”고 불만을 제기하는 이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장 목사는 “현장에 있던 당사자의 양심 고백이 유족을 위로할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헌권(67) 세월호 시민상주,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가 13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전 '천계의 바람이 되어'가 진행 중인 광주 동구 은암미술관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순천교도소에 복역 중인 이준석 청해진해운 세월호 선장의 편지를 보이고 있다. 이 선장은 이 편지에 ″모든 것이 괴롭고 힘이 든다. 반성하고 기도하며 지내고 있다″고 썼다. 손성배 기자

장헌권(67) 세월호 시민상주,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가 13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전 '천계의 바람이 되어'가 진행 중인 광주 동구 은암미술관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순천교도소에 복역 중인 이준석 청해진해운 세월호 선장의 편지를 보이고 있다. 이 선장은 이 편지에 ″모든 것이 괴롭고 힘이 든다. 반성하고 기도하며 지내고 있다″고 썼다. 손성배 기자

그는 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달 7일과 29일 이 선장과 재회했다. 이 선장은 “나도 가슴이 아프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유족에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하면서도 “왜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먼저 나왔느냐”고 묻는 말에 여전히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15분 면회 시간이 끝나고 돌아가던 이 선장은 잠시 멈칫하며 뒤를 돌아봤다고 한다. 장 목사는 “문을 나서다가 고개를 돌려 되돌아봤을 때 참회의 눈빛인지 원망의 눈빛인지는 모르겠지만, 10주기를 맞아 여러 심경이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44년 전 신학교 3학년 시절 장 목사는 귀가하지 않는 동생을 찾아 나섰다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목격했다. 교회 밖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길 위의 목사로서 살기를 결심한 순간이었다. 장 목사는 세월호 참사를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욕심이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등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팽목항에서 구한 조약돌에 노란 리본을 붙여 만든 목걸이를 항상 착용한다. 단원고 생존 학생의 아버지가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장 목사는 “세월호 참사는 유족들이 끝났다고 해야만 끝나는 슬픈 역사”라며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헌권(67) 세월호 시민상주,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가 13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전 '천계의 바람이 되어'를 전시 중인 광주 동구 은암미술관 작품 승화된 꽃(박정용 작)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진실과 정의 길 함께 합니다'라고 썼다. 손성배 기자

장헌권(67) 세월호 시민상주, 광주 서정교회 담임목사가 13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전 '천계의 바람이 되어'를 전시 중인 광주 동구 은암미술관 작품 승화된 꽃(박정용 작)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진실과 정의 길 함께 합니다'라고 썼다. 손성배 기자

세월호 365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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