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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날 바다로 끌고가도…"생존 학생, 다른 아픔 치유하다 [세월호 3654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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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 유가영(27)씨가 경기 안산 단원고 정문 앞에서 학교 명패를 바라보고 있다. 손성배 기자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 유가영(27)씨가 경기 안산 단원고 정문 앞에서 학교 명패를 바라보고 있다. 손성배 기자

세월호 3654일


2014년 4월 16일에서 3654일, 만 10년이 흘렀다. 기억 속 세월호는 여전히 기울어진 선체 위태로운 모습 그대로다. 국민 생명이 최우선인 안전한 나라는 아직 요원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남겨진 이들은 슬픔의 심연(深淵)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304명을 가슴에 묻고 새긴 채 안간힘을 다해 살아냈다. 마음 치유사로 다시 선 생존 단원고 학생, 기간제 교사 딸의 차별을 철폐하고 순직을 인정받은 아버지, 다른 재난 현장을 찾아 봉사하는 어머니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사죄를 끌어낸 목사…. 이들에게 지난 10년의 의미를 물었다.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상처 입은 치유자). 그날 세월호에 있던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학생 가운데 생존자인 유가영(27)씨가 2018년 함께 구조된 친구들과 결성한 치유 단체다.

 지난 9일 단원고 교문 앞에서 만난 유씨는 “세월호 트라우마를 안고 생존한 우리가 다른 재난 현장의 생존자를 치유한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참사 생존자로서 다른 피해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힐러로 다시 서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날 유씨는“가만히 있으세요”란 스피커 안내방송에 기울어진 맨 끝 선실에 버티고 있다가 “해경 헬기를 타고 나가자”며 친한 친구가 내민 손을 잡고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대학 2학년 때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2주간 입원했다. 유씨는 “그땐 살아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퇴원 이후에도 한국 트라우마 연구교육원 첫 상담 때 한국 트라우마 연구교육원 첫 상담 때 “방이 기울어진 것 같아요”고 말했다. 상처는 결코 사라지진 않았다.

“요즘도 때때로 찾아드는 악몽이 저를 그날의 바다로 데려갑니다. 해일이 밀려오는 꿈, 나만 살아남아 괴로워하는 꿈, 주위 사람들이 나를 떠나가는 꿈….”

 유씨가 지난해 4월 펴낸 세월호 참사와 이후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쓴 에세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에 적은 대로다. 다만 그는 그 바다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길 선택했다. 생존한 친구 3명과 함께 운디드 힐러를 만들고 6년째 인형극, 애착인형 만들기, 보드게임 등으로 아동·청소년의 트라우마 치료를 돕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 유가영(27)씨가 안산시 단원구 명성교회 세월호 치유 힐링센터 1층 전시장에서 에이블아트(장애인 아트) 미술 작품 '밤하늘에 사람들을 구조하러 여행을 떠나는 세월호들'을 보고 있다. 손성배 기자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자 유가영(27)씨가 안산시 단원구 명성교회 세월호 치유 힐링센터 1층 전시장에서 에이블아트(장애인 아트) 미술 작품 '밤하늘에 사람들을 구조하러 여행을 떠나는 세월호들'을 보고 있다. 손성배 기자

2022년 3월 동해 산불을 시작으로 재난·재해 현장의 피해자들도 만났다. 올해 초 국제원조단체에서 ‘NGO 활동가 교육’을 받은 뒤 지난달 직접 일본을 방문해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생존자도 만났다.

 유씨는 “생존자 중엔 그날, 그 자리에 갇혀 머무는 사람이 있지만, 삶을 바꾸고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며 “나보다 먼저 아픔을 겪은 후쿠시마 생존자도 그랬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사를 겪은 외국에 있는 사람들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동참하려고 한다″며 ″잊을 수 없는 일을 ‘지겹다’ ‘그만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밉다”고도 했다.

 지난 1일 에세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 개정판도 냈다. 그는 “앞으로도 제 인생을 기록하면서 10년, 그다음 10년도 기어이 살아낼 거에요.”라고 말했다.

세월호 365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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