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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기득권에 굴복 않겠다”…정면돌파 밝혔지만 대화엔 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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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1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대해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며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고 말했다. 4·10 총선을 앞두고 의대 증원 규모에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여권 내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원칙에 따른 대응을 고수한 것이다.

다만 윤 대통령은 의료계가 “더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대화의 문은 열어뒀다. 대통령실도 “2000명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다. 숫자에 매몰되지 않을 것”(성태윤 정책실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기대했던 만큼 실망하게 된 담화문”이라고 비판하고 나섰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불통 정부”라고 파상 공세를 폈다. 여당 내에선 “2000이라는 숫자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1일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 선 윤 대통령은 51분 1만4000여 자 담화를 통해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취임 후 세 번째 대국민 담화였다. 윤 대통령은 먼저 “국민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 드리지 못해 늘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의·정 충돌이 불거진 후 첫 사과 표현”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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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엔 강공 모드였다. 윤 대통령은 “제대로 된 논리와 근거도 없이 힘으로 부딪혀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시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심지어 총선에 개입하겠다며 정부를 위협하고, 정권 퇴진을 운운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대통령인 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의대 정원 증원 2000명은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정부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증원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연구 방법론에 의하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최소 1만 명 이상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정권 퇴진 운운하며 위협” 강한 어조 비판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전 유성선병원을 방문해 의료진과 이동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의료계와 대화하려고 했으나 의사단체가 각 분야로 나누어져 대화가 쉽지 않았다”며 “2차 병원이 큰 역할을 하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말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전 유성선병원을 방문해 의료진과 이동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의료계와 대화하려고 했으나 의사단체가 각 분야로 나누어져 대화가 쉽지 않았다”며 “2차 병원이 큰 역할을 하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말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특히 “향후 10~20년이 지나면 영국·프랑스·독일·일본의 의사 수와 우리나라 의사 수의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담화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국민(68회)이었다. 이어 증원(46회), 논의(23회), 개혁(19회) 순이었다. 특히 ‘굴복’이란 단어를 네 차례 사용했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단체의 요구에 굴복해서, 이해집단의 위협에 굴복해서 지금 심각한 의사 부족 사태를 초래한 것”이라며 “이해집단의 저항에 굴복한다면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득권 카르텔과 타협하고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조정의 여지는 남겼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를 향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2000명에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시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정원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KBS ‘뉴스 7’에 출연해 “2000명이라는 숫자가 절대적인 수치라는 입장은 아니다”며 “정부는 2000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해서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친한계 인사는 “국민이 불안해하니 정부든 의사협회든 빨리 결론을 내리자는 것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숫자에 매몰될 문제가 아니다’는 메시지의 취지”였다며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모두 의료계와 대화하자는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담화에 이어 윤 대통령은 대전 유성선병원을 깜짝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와 대화를 하려고 했으나 개원의, 전공의, 교수 등 의사단체가 각 분야로 나누어져 대화가 쉽지 않았다”며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탄없이 말해 달라”고 했다. 여러 건의를 들은 윤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서기관, 사무관들이 의료기관에 가서 실제로 행정 근무를 해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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