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카드만 받는 버스' 확산…현금 승객 2만명은 외면 당했다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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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에 현금 없는 버스가 크게 늘었다. 뉴스 1

서울시내에 현금 없는 버스가 크게 늘었다. 뉴스 1

 현금통이 시내버스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82년쯤인 것 같다.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에 문의해보니 오래된 일이라 명확한 자료나 공문은 없지만, 그해 8월 시민자율버스 시범 운행 때로 추정된다는 답이 왔다.

 당시 10개 노선, 172대의 버스에서 뒷문을 막아 앞문 승차를 유도하고, 요금도 안내양이 받는 대신 승객이 직접 지불하는 방식을 시범적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이때 운전석 옆에 현금통을 처음 설치했을 거라는 추정이다. 이어 84년 11월에 ‘버스요금 선수제(승차 때 요금을 받는 제도)’가 실시되면서 요금통이 대거 놓인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였다.

 이처럼 40년가량 활용된 현금통이 요즘 많이 사라졌다. 현금을 받지 않고 교통·신용카드로만 요금 결제가 가능한 ‘현금 없는 버스’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금 없는 버스는 4월 기준으로 109개 노선에서 1800대 넘게 운행 중이다. 전체 서울 운행 버스의 25%나 된다. 대전 등 일부 지자체도 현금 없는 버스를 확대 중이다.

 서울에 현금 없는 버스가 시범 도입된 건 지난 2021년 10월이었다. 8개 노선, 171대의 버스에서 현금통을 없애고 교통·신용카드로만 승차를 허용했다. 이후 1년 반 만에 운행 노선과 대수가 1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서울시가 현금 승차를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금을 내는 승객 비율이 미미한 데다 그마저도 해마다 줄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금 승차 비율은 2012년 3%에서 지난해에는 0.6%까지 감소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5년 이내에 0.1% 안팎까지 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 없는 버스 안내문. 강갑생 기자

현금 없는 버스 안내문. 강갑생 기자

 게다가 현금승차 폐지는 서울 시내버스업체들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2020년 9월엔 현금승차 폐지를 공식으로 서울시에 건의하기도 했다. 현금 승차를 계속 유지하면 운전기사가 현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는 등 부수적인 업무를 해야 하는 탓에 안전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금 정산도 부담이다. 버스 회사마다 매일 3~4명의 직원이 그날 모인 현금통을 열어 돈을 세야 하는 하는데 이런 업무에만 서울 시내버스 전체에서 연간 20억원가량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간혹 승객이 금속 재질의 요금함에 부딪히거나 옷이 걸리는 등 사고가 발생하는 점도 고려했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이렇게만 보면 현금 없는 버스의 확대는 별문제가 없는 듯싶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현금 승객 0.6%를 숫자로 치면 2만명이나 된다. 하루 평균 2만명이 현금을 내고 버스를 탄다는 얘기다. 카드 사용에 익숙지 않은 노인이나 평소 선불카드를 쓰지만, 제때 충전을 못 한 승객, 그리고 외국인 등이다.

 이들에게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은 ▶편의점에서 교통카드 구입 및 충전 ▶모바일 교통카드 이용 ▶버스회사 계좌로 요금 이체 등 세 가지다. 서울시는 버스정류소 중 85% 이상이 반경 200m 이내에 교통카드 구입이나 충전이 가능한 편의점 또는 가판대, 지하철역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당장 타야 할 버스는 도착했는데 교통카드가 없거나 잔액이 부족한 상황을 알게 되는 때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교통카드를 사거나 충전을 위해 이동하는 동안 버스가 기다려줄 리 만무한 탓이다. 불가피한 경우 버스기사가 승객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기록한 뒤 요금을 계좌 이체할 수 있는 안내문을 주는 방안을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하철역에는 현금을 내고 일회용 승차권을 살 수 있는 발매기가 있다. 강갑생 기자

지하철역에는 현금을 내고 일회용 승차권을 살 수 있는 발매기가 있다. 강갑생 기자

 하지만 현금 승차를 위해 개인정보를 넘겨주는 것도 문제인 데다 스마트폰 이용이 서툰 노인의 경우 계좌 이체를 위해 은행을 가야만 하는 번거로움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지하철도 카드로만 이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하철역에는 현금을 내고 일회용 탑승권을 살 수 있는 승차권발매기가 설치돼 있다. 반면 버스정류소에 교통카드 자동판매기를 설치한다는 계획은 아직 없다.

 현금 없는 버스가 2000년대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등장한 ‘현금사용선택권’이라는 개념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금사용선택권’은 ‘현금결제선택권’으로도 불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금사용선택권’은 소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급결제수단 선택 시 현금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영국과 스웨덴 등에선 2000년대 이후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 등 현금을 대신하는 지급수단 이용이 활성화되면서 취약계층의 금융소외 및 소비활동 제약, 공적 화폐유통시스템 약화 등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현금사용선택권이다. 현금을 쉽게 찾을 수 있고, 필수적인 서비스에선 현금결제가 가능하도록 보장해주는 내용 등이 포함된다.

한국은행이 제작한 '현금사용선택권' 홍보 포스터. [자료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제작한 '현금사용선택권' 홍보 포스터. [자료 한국은행]

 2020년 한국은행 발권국의 의뢰로 진행된 ‘현금결제선택권 보장 입법 추진 국가의 관련 제도 도입 현황 및 시사점’(현정환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연구보고서엔 “국내에서 교통ㆍ의료보건과 같은 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에서도 현금이 적지 않게 이용됨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2018년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교통비가 현금지출 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7%나 된다. 식료품이 53.1%로 가장 많았고, 의료ㆍ보건도 5.5%에 달한다. 현금 없는 사회 만을 추구하다가 대규모 정전 또는 시스템 오류 탓에 카드 결제가 마비되거나 카드 사용에 따른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교통 전문가들도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정책 방향은 인정하면서도 세심한 보완책을 요구한다. 이동민 서울시립대 교수는 “대중교통은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서비스이어야 한다”며 “현금 승객에 대한 배려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경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도 “디지털 문맹으로 인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는 노인 등의 현금이용권을 존중해주는 게 공공의 책무”라며 “지하철 무료 승차권 연계, 주요 정류장에 일회용 승차권 발매기 설치 등의 보완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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