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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추모공간 갈등 격화…서울시의 대안 요청, 유족들 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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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에 기습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에게 서울시가 추모 공간을 세울 다른 곳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한 시한이 지났다. 유족들은 지난 4일 분향소가 설치된 서울광장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녹사평역 외에 추모 공간 대안을 12일 오후 1시까지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시측이 제시한 시간까지 유족 측 응답은 없었다.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서울시가 추모 공간 대안과 관련해 유족이나 시민대책회의와 직접 대화하지 않았다”며 “서울시의 일방적인 알림에 일일이 답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12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절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유가족 측에 이날 오후 1시까지 녹사평역 외 추모공간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했으나 유족 측은 응답하지 않았다. 뉴스1

12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절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유가족 측에 이날 오후 1시까지 녹사평역 외 추모공간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했으나 유족 측은 응답하지 않았다. 뉴스1

유족 “서울시 일방 통보”…진실 공방

유족 측은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서울지하철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추모 공간으로 결정하고, 유족들을 몰아붙이고 있단 입장이다. 협의회는 입장문에서 “(유족이) 공식적으로 세종로공원에 분향소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이를 단박에 거절했다”며 “유족 의사와 관계없이 녹사평역 지하 4층으로 분향소를 옮기라는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유족 주장에 정면 반박한다.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유족 측이 구체적으로 용산구청 내부와 녹사평역을 요구했다”며 “유족 측도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아무런 소통 없이 추모 공간을 기습적으로 무단·불법 설치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유족 측 대리인은 지난해 12월 21일 서울시에 “추모·소통 공간은 이태원 인근 지역 공공건물이 좋겠다”며 두 곳(용산구청·녹사평역)을 먼저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오 부시장과 서울시·용산구청 관계자가 녹사평역을 현장 방문하고, 인근 상인회 등의 의견을 청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1월 11일 녹사평역을 방문해 필요사항을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시는 임의로 추모 장소 후보지를 고른 게 아니라, 당시 유족 측이 선(先)제안 했기 때문에 시장·부시장이 녹사평역 현장을 점검했다는 입장이다. 진실 공방이 불거지자 유족 측은 “녹사평역은 지난해 12월 추위를 피하기 위한 임시 장소이지, 추모 공간의 결정지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12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12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사흘 남은 분향소 자진철거 기한

양측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서울광장 분향소 자진철거 기한이 다가오면서 갈등 국면은 격화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오는 ‘15일 오후 1시’를 (분향소) 자진철거 기한으로 제시한 상황이다. 애초 서울시는 2차 계고장을 통해 지난 8일 오후 1시를 자진철거 기한으로 했다가 “유족의 비통한 심정을 이해한다”며 일주일 미뤘다. 이에 대해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7일 “후안무치식 태도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서울시와의 소통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 5일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분향소를 철거하러 올 경우 휘발유를 준비해놓고 그 자리에서 전부 아이들을 따라갈 것”이라고 격하게 반응했다. 지난 6일부터 매일 추모 촛불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는 유족 측은 자진철거 기한인 15일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는 신중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행정대집행을 해야겠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며 “분향소에 대한 여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9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서울시민 1007명을 대상으로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60.4%가 광화문·서울광장 분향소 설치에 반대했다. 찬성한다는 답변은 37.7%, 잘 모르겠다는 답변은 1.9%였다. 표본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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