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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진짜 리허설은 부엌이다" 국립발레단 맏형의 말, 무슨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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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8일 오후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박예은 수석 무용수와 함께 '지젤' 리허설 중이다. 김경록 기자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8일 오후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박예은 수석 무용수와 함께 '지젤' 리허설 중이다. 김경록 기자

지난 8월 18일 서울 국립극장 객석. ‘발레 수프림 2022’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던 소녀들이 "우와아" 탄성을 질렀다. 같은 줄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완이 착석하면서다. 꼬마 숙녀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서 사인을 부탁하자 김기완 무용수는 다섯 명 모두의 이름을 하나하나 물어보며 “재미있게 보세요”라고 인사를 덧붙였다. 미래의 발레리나들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다. 이날 공연에 등장한 김기민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는 김기완 씨의 친동생. 형은 한국을, 동생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무용수로, 둘 사이의 우애는 각별하다. 이날 약 45개월만에 고국 무대에 선 동생이 그랑 주떼 점프로 날아오르자 형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선 기완 무용수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올해 60주년을 맞는 국립발레단이 11~13일 무대에 올리는 ‘지젤’ 리허설이다. 그는 주인공 귀족 알브레히트 역을 맡아 박예은 수석무용수와 호흡을 맞춘다.

이날 리허설엔 국립발레단이 프랑스에서 초청한 비비안 데쿠튀르 전 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및 미스트리스(지도자)가 함께 했다. 프랑스 정부 훈장도 수훈한 데쿠튀르는 두 무용수에게 손가락의 각도부터 시선의 위치까지 세심한 일명 ‘코렉션(지적 사항)’을 쏟아냈다. 두 무용수는 스펀지처럼 이를 받아들여 몸으로 바로 표현해냈고, 데쿠튀르는 “바로 그거지” “좋아”를 연발했다. 국립발레단의 60주년 겨울은 뜨겁다. ‘지젤’부터 ‘트리플 빌’(11월 18~20일)에 이어 12월은 ‘호두까기 인형’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김기완은 세 작품 모두에서 주역이다. 리허설 직후 그를 만났다.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지젤' 2막의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발을 교차하는 '앙트르샤' 점프를 연속으로 해낸다. 표정은 온화하지만 땀이 비오듯했다. 김경록 기자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지젤' 2막의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발을 교차하는 '앙트르샤' 점프를 연속으로 해낸다. 표정은 온화하지만 땀이 비오듯했다. 김경록 기자

국립발레단은 60주년, 기완 무용수는 입단 10주년이네요.  
“발레단 50주년 갈라 공연 때 제일 막내였는데 어느덧 10년이 지났네요. 부상도 슬럼프도 겪었고 팬데믹도 거치면서 지난해부터 일종의 터닝포인트를 지나는 것 같아요. (지난달 25일) 발레단 60주년 기념 포럼에서도 많은 선배 무용수들 뵈면서 생각했어요. 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있고, 나도 더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죠.” 

그는 "발레도 결국 팀워크"라며 "군무부터 주역까지 모두의 호흡이 맞아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한 파드되(pas de deux, 2인무)에도 뛰어나 '파드되 장인'이라 불릴 정도. 상대를 배려하는 그의 성격은 춤에서도 읽힌다. 김기완의 춤은 사려 깊다.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리허설 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의 오랜 꿈 중 하나는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발레 전용극장이다. 김경록 기자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리허설 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의 오랜 꿈 중 하나는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발레 전용극장이다. 김경록 기자

30대에 접어들었는데, 앞으로 계획은요.  
“저는 장점을 많이 가진 무용수는 아니에요. 키는 크지만(189cm) 부족한 점이 많죠. 그래서 보완을 더 하기 위해 표현력 등을 고민해요. 기계적 테크닉만 완벽하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니까요.”  
지난 8월 동생을 인터뷰(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5130)했는데 기민 무용수도 본인이 약점이 많다고 하던데요.  
“(웃으며) 그런데, 진짜로 그래요. 동생도 저도 서로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요, 제가 존경하는 무용수들은 동생부터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전 볼쇼이 발레단장)까지 다들 단점이 있고, 그 단점을 스스로가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의 차이는 그 단점을 벽으로 삼고, 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벽을 타고 오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거죠. 저도 그런 각성을 해야겠다고 느꼈었고요.”
형제 무용수, 김기완 김기민. [중앙포토]

형제 무용수, 김기완 김기민. [중앙포토]

계기가 있었겠죠?  
“발레단에 들어온 뒤, 2014년인가 제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 춤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왜 그간 나는 더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진지하게 각성하고 각오를 다졌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발레단 안팎의 많은 무용수들을 보며 계속 각성을 해요. 무대 경험도 중요하지만 매일의 클래스(기본 연습)에서도 많이 배워요.”  
연습은 기본이겠죠.  
“제가 게을러서 별명이 나무늘보이긴 한데, 연습은 열심히 해요(웃음). 팬데믹 때도 옥상에 개인용 댄스 플로어를 깔고 연습했어요. 몸은 하루 만에, 한 달 만에 바뀌지 않으니까요. 꾸준히 하면 3~4년 뒤에 변화가 오죠. 중요한 건 단순한 연습 시간이 아니라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생각하는 거 같아요. 동생과 제가 진짜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진짜 리허설은 부엌에서 하는 거’라는 선생님 말씀이에요. 설거지하다가도 동작과 표현을 계속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죠. 매번 공연이 끝난 뒤엔 항상 무언가가 바뀌어 있어요.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 되는 거죠.”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는 '파드되(2인무) 장인'이라 불린다. 김경록 기자

김기완 박예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경록 기자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의 점프. 김경록 기자
국립발레단 유튜브에서 바실리예프 전 단장이 40대 중반에 오른 ‘지젤’ 무대를 언급했었죠.  
“40대 중반이었다는 설명이 없었다면 그 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움직임의 퀄리티가 달랐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있어요. 이원국(55) 선생님이요. 지난달 (민간 발레 단체들의 모임인 발레STP 갈라) 무대에서도 ‘해적’의 알리 역 솔로를 하시는 걸 보고 감명받았어요. 단순히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에 더해서, 안무도 더 어려운 걸로 고르셨죠.”  
동생과 우애가 유난히 깊은데요.  
“제가 동생에게 굉장히 약하긴 해요(웃음). 그런데 무용을 두고는 서로 적나라하게 지적을 해요. 서로의 춤에 확신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지젤’에서도 알브레히트가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꽃을 반대 방향으로 들어봐라’ 등의 지적을 서로 해주는 거죠. 그럼 다음날 연습에서 그렇게 해보고, 선생님들께 여쭤봐요. 움직여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동생은 제 혈육이긴 하지만 뛰어난 예술가이거든요. 제가 다섯 가지를 본다면 동생은 여덟 개를 봐요. 분명히 배우는 게 있죠. 근데 서로 끝까지 안 듣는 것도 있어요(웃음).” 
김기완 수석무용수 어린 시절. [뉴시스]

김기완 수석무용수 어린 시절. [뉴시스]

제일 기분 좋은 칭찬은 뭘까요.  
“선생님들께서 해주시는 ‘잘했다’는 말씀이요. 어렸을 때부터 지도해주셨던 이원국 선생님, 블라디미르 김 선생님, 마가리타 쿨릭 선생님께 가끔 영상을 보여드리면 ‘사람이 커졌다’거나 ‘드라마다 성숙해졌다’ 등으로 코멘트를 주시는데 그게 참 좋고 감사해요.”  
기완 수석에게 발레란 어떤 의미일까요.  
”발레를 너무 사랑해서 못 견디겠다, 이런 말은 간지러워서 못하겠고요(웃음). 그냥 하는 거예요. 제가 제일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고, 오래 하고 싶은 거니까요. 10년 뒤에도 관객분들께 감동을 드릴 수 있는 춤을 출 수 있도록 매일 발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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