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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98% 한국사람" 英로열발레단 최유희, 서울 무대에 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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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영국 로열발레단 최유희 무용수. 이 발레단의 첫 한국인 무용수였다. [중앙포토]

영국 로열발레단 최유희 무용수. 이 발레단의 첫 한국인 무용수였다. [중앙포토]

“출생과 뿌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예술은, 춤은 내가 선택할 수 있죠. 내가 선택한 길을 뚜벅뚜벅 갈 뿐입니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스타 무용수인 최유희 발레리나가 2010년 내한 당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태어난 한국계 일본인으로, 영국에서 활동해왔다. 한국이 낳고 일본이 키우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인 셈. 그러나 발레리나 최유희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몸이 보여주는 언어, 춤이다. 다음달 18~20일 서울 국립극장은 마침 그가 표현하는 언어를 직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그는 지난 12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98% 한국인이고, 한국과 일본을 모두 사랑한다”며 “7년만에 다시 서는 한국 무대가 손꼽아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발레리나 최유희. 다음달 서울 무대에 선다. 7년만이다. [사진 본인 제공]

발레리나 최유희. 다음달 서울 무대에 선다. 7년만이다. [사진 본인 제공]

그의 서울 컴백이 가능했던 건 ‘발레 수프림 2022’ 갈라 무대 덕이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부터 세계 각국 최정상 무용수들이 함께 모이는 터라 반가움을 더하는 공연이다. 2010년 당시 그는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 출연했다. 그사이, 강산도 변했고 그는 발레리나 이외 인생의 뜻깊은 목표를 성취했다. 엄마가 되면서다.

그는 “발레리나가 되는 것과 엄마가 되는 것이 인생의 두 가지 목표였는데, 감사하게도 2020년 여름 임신을 했고 딸 미리엄(Myriam)을 낳았다”고 희소식을 전했다. 그의 남편은 로열발레단의 수석무용수였던 너헤미야 키쉬다. 최유희 무용수는 이번 갈라 무대에서 로열발레단 동료 윌리엄 브레이스웰과 함께 ‘코펠리아’와 ‘주빌레’ 파드되(pas de deux, 2인무)를 춘다. 브레이스웰은 올해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로열발레단의 간판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팬데믹 기간은 무용수들에게도 특히 힘들었을 텐데.
“모든 것이 중단되면서 무대에도 설 수 없었지만 (집에서) 작은 공간을 활용해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해갔다. 요가도 즐겁게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그 기간에 임신과 출산을 무사히 할 수 있었기에 그 행운에 감사하다.”
발레는 잔인할 정도로 정확도와 체력을 요구하는 예술인데,  
“힘들긴 하지만, 모든 것엔 끝이 있다. 힘들 때마다 기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나는 왜 발레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사랑하니까, 내 열정이니까. 포인트슈즈(토슈즈)를 신고 점프하는 것을 마스터 하기 위해 바워크에도 일부러 토슈즈를 신고 연습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걸 좋아하는 거 같다. 성장을 할 수 있으니까.”  
다음달 국립극장 '발레 수프림 2022'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발레 무용수들이 모인다. 포스터 메인 모델은 김기민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다음달 국립극장 '발레 수프림 2022'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발레 무용수들이 모인다. 포스터 메인 모델은 김기민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연륜이 더해가면서 느끼는 점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무대 경험도 쌓인다는 의미도 된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예술성에 더 많은 배움을 얻고 있다. 발레는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줬지만 특히 헌신(dedication)의 가치를 일깨웠다.”

그는 다섯 살 때 우연히 발레를 접하고 빠져들었다. 발레 꿈나무들이 출전하는 로잔 콩쿠르(Prix de Lausanne)에서도 두각을 드러냈고, 로열발레단에 입단해 현재 퍼스트 솔로이스트다. 그는 “로열발레단 입단 첫해, 19세에 췄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무대부터 엄마가 되어 돌아온 지금도 동료 무용수들과 예술 스태프들이 보여주는 우정과 지원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열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중 최유희 무용수의 무대. [Photo by Andrej Uspenski ]

열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중 최유희 무용수의 무대. [Photo by Andrej Uspenski ]

그가 로열발레단에 입단했을 때만해도 그는 유일한 한국계였지만, 지금은 외롭지 않다. 여러 한국인 후배 중엔 최근 퍼스트 아티스트로 승급한 전준혁 발레리노도 있다. 바다 건너 프랑스의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지난해 첫 아시아계 에투왈(수석무용수)로 박세은 씨를 승급시키기도 했다. 그는 “한국 무용수들의 재능이 꽃피우는 것은 진정 반가운 일”이라며 “한국인 무용수들은 테크닉도 뛰어나지만 결의가 대단하면서도 춤에는 영적인 아름다움이 녹아있다”고 칭찬했다.

출산 후 컨디션 유지가 힘들진 않을까. 그는 “딸 덕분에 (바빠서)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된다”며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매일의 발레 클래스 전에 스트레칭과 요가ㆍ필라테스로 몸을 충분히 풀어준다”며 “한국 음식도 엄청 좋아해서 (한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뉴몰든 지역에서 장을 봐서 한국식 바베큐를 즐기고, 스시나 잡채 등도 직접 내 스타일대로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딸이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한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미리엄이 뭘 하고 싶어하든, 전폭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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