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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까지 갔어요" 안중근으로 컴백, 스타 발레리노 아픈 4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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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발레 무용수는 손끝으로도 연기를 한다. 위 사진의 이동훈, 김지영 무용수처럼. 오는 9~29일 열리는 대한민국 발레축제 개막작인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리허설 장면이다. 김경록 기자

발레 무용수는 손끝으로도 연기를 한다. 위 사진의 이동훈, 김지영 무용수처럼. 오는 9~29일 열리는 대한민국 발레축제 개막작인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리허설 장면이다. 김경록 기자

“우리 동훈이가 달라졌어요.”  

지난달 29일 국민대 예술관 연습실. M발레단이 오는 9~10일 올리는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의 주역, 김지영 발레리나의 말이다. 안중근 역할을 맡은 주역 이동훈 무용수를 두고 “크게 성장했다”며 내놓은 칭찬이다. 김지영ㆍ이동훈 두 무용수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할 당시 파트너로 무대에 자주 섰던 선후배 사이. 퇴단 후 이번 무대로 처음 다시 호흡을 맞췄다. 일요일이지만 오전11시부터 내리 7시간을 리허설을 마친 직후, 이들은 서로를 향해 칭찬과 격려를 쏟아냈다. 이동훈 무용수는 “제가 완전 새내기였을 때 이미 톱클래스였던 지영누가가 저를 이끌어주셨었다”며 “예전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서 겁도 났는데, 그간 저도 성장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활짝 웃었다.

이동훈 발레리노에게 이번 작품은 의미는 깊고도 크다. 비보이를 꿈꾸다 선생님 권유로 발레를 시작한 그는 한국 발레계의 내로라하는 스타였다. 그러다 곡절 끝 미국 행을 택했고, 이번은 4년 만에 첫 고국 무대다. 6월 9~29일 열리는 대한민국 발레축제 개막작인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국립발레단 부예술감독을 지낸 문병남 M발레단 대표가 안무와 총감독, 양영은 감독이 대본과 연출을 맡은 순도 100% 창작 작품.

내면 연기의 깊이도 더해진 이동훈 발레리노. 김경록 기자

내면 연기의 깊이도 더해진 이동훈 발레리노. 김경록 기자

문 단장은 이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무용수들과 함께 테크닉뿐 아니라 내면의 깊이까지 고민하며 작업했다”며 “해외 진출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 무용수는 처음엔 주역 제의를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무대에 다시 서고 싶은 마음과,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한 창작 발레 작품이라는 매력에 결국 출연을 결심했다. 20대엔 왕자 귀족 역할을 도맡았던 그가 30대 중반이 되어 표현하는 독립투사는 어떨까.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그랑주떼를 뛰는 안중근 의사. 김경록 기자

그랑주떼를 뛰는 안중근 의사. 김경록 기자

4년 만의 컴백, 환영합니다. 안중근 의사 역할, 어떤가요.  
“데뷔 무대처럼 설레면서 부담도, 기대도 많이 돼요. 제의를 받았던 3월 말엔 안중근 의사라는 위인을 제가 잘못 표현하면 어쩌나 우려도 했지만, 열심히공부를 한 지금은, 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면 연기도 부쩍 늘었다는 칭찬도 나오던데요.  
“미국에 가서 정말 (잠시 침묵) 힘들었어요. 인생 공부 많이 했죠(웃음). 한국에서 활동할 때 얼마나 많은 분이 저를 도와주셨는지 미국에서 깨달았어요. 내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고 절감했어요. 세상은 굉장히 넓더라고요. 무용 커리어에서 밑바닥도 내려가봤고요. 국립발레단이라는 큰 단체에서 프린시펄(수석)을 하다가 미국에서 프리랜서로 크고 작은 무대에 섰거든요. (‘호두까기 인형’의) 쥐 왕 역할부터 캐릭터 댄스도 했었고요. 그러다 사업을 할까 했는데 와이프가 ‘오빠는 무용 얘기할 때 가장 행복해 보여’라길래 용기를 냈죠. 그런 경험이 녹아 나오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부상도 심했죠.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서 턴이나 점프를 뛸 때 트라우마가 좀 생겼었어요. 연습을 쉬면서 솔직히 너무 편하더라고요(웃음). 그러다 나태해지고 살도 많이 쪘고요. 찌는 건 너무 쉽고 빼는 건 너무 어렵잖아요(웃음). 그러다 미국에 있으면서 연습을 계속하고 몸을 더 돌보게 되니, 좋아지더라고요. 연습을 하면서도 오늘 안 되는구나 그럼 내일 해보자, 이런 식으로 꾸준히 했어요. 그러다보니 트라우마도 어느새 사라지더라고요.”
사실상 은퇴 아닌가 마음졸인 팬들이 많았어요.  
“발레를 놓아야 하나, 라는 생각도 안 했던 건 아닌데요.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침묵)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평생 동반자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랄까, 항상 함께 있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발레는 생활이니까요. 마트에서 계산대에서 대기할 때도 5번 (포지션)으로 서 있고풀업(pull-up) 상태로 있으니까. 상실감이 컸죠.”  
미국에서 다양한 일을 시도하면서 어땠나요.  
“발레를 놓는다는 상실감도 컸지만 일면으론 글쎄요, 발레 외에도 인생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어요. 영상 편집과 코딩도 공부했고 바리스타도 해봤거든요. 무용만 생각하다 다른 것을 해봤죠. 무용 외에도 무용만큼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으면 해요.”  
이동훈 발레리노. 미국에서 다양한 일을 겪으며 무용수로도 성장했다. 김경록 기자

이동훈 발레리노. 미국에서 다양한 일을 겪으며 무용수로도 성장했다. 김경록 기자

이동훈 무용수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발레를 테마로 해서 재미있는 영상을 올리며 호응을 얻었다. 마트에서 장 보며 발레 동작을 선보이거나, 클래식 발레 대표작인 ‘지젤’에서 힌트를 얻어 ‘지하철 타고 지젤을 찾아가는 (남자 주인공) 알브레히트’ 영상을 찍은 게 대표적. 다양한 일을 경험하긴 했지만 결국 발레로 돌아왔다. 미국의 유력 무용단체인털사 발레단(the Tulsa Ballet Theater) 오디션을 봤고, 바로 합격했다.

그는 이번 무대에 대해 “공연 날짜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한국에 앞으로는 자주 들어올 예정이니 다양한 무대와 기회로 관객께 인사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리허설. 김경록 기자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리허설. 김경록 기자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리허설. 김경록 기자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리허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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