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3번째 앤츠랩 뉴스레터가 제게 내줬던 숙제가 있죠. 메인으로 S-OIL을 분석하면서, 정유사의 원유 재고 관련 손익을 어떻게 회계로 인식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쉽게 말해 정유사라면 원유를 창고에 많이 비축해 뒀을 텐데, 유가가 오르내리는 데 따라 실적이 어떻게 변하냐는 것이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유가는 정유사 실적에 완벽히 연동된 건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원리로 그런지 최대한 쉽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노을을 뒤로 한 유류 창고들. 셔터스톡
우선 우리가 명심해야 할 회계의 대원칙이 있습니다. '보수주의'입니다. (선거 이야기 아님 주의!)
회계에서 보수주의는 '손실은 최대한 빨리, 이익은 최대한 천천히' 반영하라는 원칙이죠. 좋은 건 빨리 알리고 싶고, 나쁜 건 감추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일 터. 그러나 회계의 원칙은 이를 과감히 거스릅니다. 그래서 회계가 본성을 이긴 인간 지혜의 산물!
회계는 '손실은 빨리, 이익은 천천히' 반영하라는 보수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셔터스톡
이런 대원칙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봅시다. 어떤 기업 창고에 있는 재고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이건 손실이죠? 최대한 빨리 반영해야겠죠?
기업은 '재고자산 평가손실'을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을 때 즉각 반영해야 합니다. 정유사가 배럴 당 50달러로 사서 창고에 저장해 둔 원유 가격이 40달러로 내리면, 재고자산 평가손실로 10달러를 인식하는 식입니다. (재고자산의 시장가격이 하락하면 순실현가능가치가 떨어졌다고들 하는데, 이 부분까지 설명하면 더 헷갈릴 수 있으니 다음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기업 창고에 있는 재고자산 가치가 떨어지면 손실로 반영해야한다. 셔터스톡
반대로 재고자산 가치가 오르면요? 이땐 '재고자산 평가이익'으로 반영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회계는 보수주의라고 했죠? 재고자산 평가이익이라는 개념 자체가 회계란 사전엔 없습니다. 50달러에 사 둔 원유가 60달러로 오른다고 해도 오른 가치 10달러 만큼의 이익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유가가 오른다고, 정유사가 '재고자산 평가이익'을 얻진 않는다. 셔터스톡
그럼 이럴 땐 어떻게 될까요? 50달러에 사서 창고에 뒀는데, 이게 40달러가 돼 10달러 만큼을 '재고자산 평가손실'로 처리했습니다. 그랬는데, 유가가 다시 60달러로 뛰면요?
이땐 손실로 처리한 부분에서 원래 가격으로 돌아온 만큼만 다시 이익으로 되돌립니다. 40달러였다가 60달러로 오른 20달러 만큼이 아니라, 애당초 구입했던 50달러까지 오른 인상분만큼만 다시 살리는 거죠. 사실 이익이라기보다는 과거에 손실 처리한 것을 다시 되돌렸다고 해서 '재고자산 평가손실을 환입했다'라고 합니다.
정유공장 이미지. 셔터스톡
유가가 출렁출렁하는 만큼 정유사는 재고자산 변동이 잦은 편입니다. 어떨 땐 수천억원대 손익이 이 재고 가치 변동으로 생깁니다. 기름은 가만히 창고에 들어가 유유(油油)자적하고 있는데,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기업과 투자자 속만 울렁울렁하는 거죠.
실제 사례를 볼까요? 두번의상폐 에디터가 분석하신 S-OIL의 최근 3년간 재고자산과 재고자산평가손실, 그리고 환입한 숫자를 좀 봅시다.
S-OIL의 재고자산과 관련 손실과 환입.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회사의 2019년 당기순이익은 654억원이었는데, 2018년과 2019년 재고자산 평가손실로 잡았다가 환입한 규모만 2000억원대입니다. 순이익 흑자·적자 여부를 좌우할 정도죠.
그럼 정리해 봅시다. 지금처럼 유가가 오르면 이게 곧바로 정유사의 이익이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 유가가 내려 손실로 처리한 부분을 다시 이익으로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좌우되는 금액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 이해하고 가실게요. by.앤츠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