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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하의 시시각각

이재명, 문 정부와 차별화 성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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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선을 100여 일 남겨놓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승부수를 던졌다. 이 후보는 20일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의 민주당은 누가 뭐래도 ‘문재인의 민주당’이다. 이 후보의 발언은 자신을 문 대통령의 계승자라는 테두리에 가두지 않고 독자 노선을 적극 도모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불리한 선거구도 흔들기 위해 #‘이재명의 민주당’ 승부수 던져 #대통령과 차별화는 위험도 커

 그는 전날 “인물을 비교하면 이재명이 낫긴 한데 민주당이 싫다는 분이 꽤 있다”는 말도 했다. 민주당은 좋아도 이 후보가 싫다는 사람도 어쩌면 있겠지만, 어쨌든 이 후보 본인은 당명 개정, 외부 인사 영입 등을 통한 당 신장개업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후보가 비상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현재의 선거 구도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을뿐더러 상투적인 선거 캠페인으론 정세 반전이 만만찮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세대 구도에서 이 후보는 대체로 30·40대에서만 강세고, 20대와 50대 이상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밀린다. 당연히 20대와 50대 이상의 숫자가 30·40대보다 훨씬 많다. 과거엔 진보의 주력이었던 20대의 보수화가 이 후보에게 뼈아프다.

지역 구도에서도 호남 말고 이 후보가 우세를 장담할 지역이 없다. 원래 수도권은 민주당의 전략 지역이었으나 아파트값 폭등으로 서울 민심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지 오래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지 7개월이 흘렀지만 민심이 달라졌다는 징조는 아직 안 보인다. 서울이 악화하니 자연히 이 후보의 본거지인 경기까지 흔들린다. 이념 구도를 봐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중도층·무당파에서 야권 후보(윤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의 지지율 합계가 이 후보를 압도한다. 민주당은 중도로의 외연 확장에 한계가 역력하다.

11월19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대선 여론조사.    한국갤럽 제공

11월19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대선 여론조사. 한국갤럽 제공

 이 같은 세대·지역·이념 구도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니기 때문에 쉽게 안 바뀐다. 그래도 바꿔야 한다면 과감한 ‘판 흔들기’가 필수적이다. 이재명 후보에겐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구도 변화의 계기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요즘 정권심판론이 정권재창출론보다 훨씬 우세한 상황에서, 이 후보 입장에서 차기 대선이 문 대통령에 대한 찬반 투표로 흘러가는 시나리오는 피해야 한다. 그러려면 부동산, 탈원전, 소득주도 성장, 대북정책 등 현 정부의 대표 정책 가운데 국민적 불만이 누적된 분야는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약속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통일 지향은 이미 늦었다”(21일), “(원전은) 옳냐 그르냐를 떠나 이미 하나의 경제구조가 돼 버렸다”(16일)는 이 후보의 최근 발언에서 그런 기미가 감지된다. 20대 남성을 공략하기 위해 이 후보가 페미니즘을 손절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차별화 사례로 보인다.

 정치사를 봐도 지난 30년간 현직 대통령과 거리두기 없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여당 후보는 없었다. 김영삼(YS) 민자당 대표는 툭하면 노태우 대통령을 들이받았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여당을 탈당해 노무현 후보의 어깨를 덜어줬고, 박근혜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실질적인 제1 야당 대표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위험부담도 크다. 2007년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척진 이후 본래의 여당 지지층을 회복하지 못한 채 대패했다. 1997년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것도 YS와 이 후보의 사이가 틀어진 게 단초를 제공했다. 이때부터 대통령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진 못해도, 누가 대통령 되는 건 막을 수 있단 말이 생겨났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임기 말인 지금도 30%대의 지지율(한국갤럽)을 유지할 정도로 고정 지지층이 탄탄하다. 민주당 내부도 여전히 친문이 핵심이다. 당내 기반이 부족한 이 후보가 문 대통령 지지층의 이탈을 막으면서 동시에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성공하는 건 아슬아슬한 곡예가 될 전망이다.

김정하 정치디렉터

김정하 정치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