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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세금 손질, 뒷감당 되시겠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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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세제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이 후보는 토지보유세를 걷어 전 국민에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토지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윤 후보는 종부세 부담이 과도하다며 '종부세 전면 개편론'을 들고 나왔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 본 아파트 단지. [뉴시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세제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이 후보는 토지보유세를 걷어 전 국민에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토지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윤 후보는 종부세 부담이 과도하다며 '종부세 전면 개편론'을 들고 나왔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 본 아파트 단지. [뉴시스]

딱 16만 명. 1977년 6월, 부가가치세 시행을 보름 남짓 앞두고 청와대에서 당정 협의가 열렸다. 여론이 심상찮았기 때문이다. 연기론과 강행론이 팽팽히 맞섰다. 연기로 흘러가던 회의 분위기는 김정렴 대통령비서실장의 설득으로 강행으로 틀었다. "납부 의무를 지게 된 상공인은 83만 명이지만, 대부분 간편 과세특례자라 세금계산서 등을 발행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 적용 대상자는 이들의 19%, 16만 명에 불과하다."(김정렴 회고록 『아, 박정희』)

결과적으로 부가가치세는 국가 세수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정치적 대가는 컸다. 이듬해 12월 총선에서 여당(공화당)은 의석수에선 이겼으나 득표율에선 야당(신민당)에 1.1%포인트 지고 말았다. 견고했던 유신 체제에 금이 갔다. 세금은 정치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반 '거위 털 뽑듯' 슬그머니 근로소득세 공제를 축소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눈 가리고 아웅식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우다 결국 권력 내부 균열까지 불렀다.

이재명과 윤석열 두 대선후보가 세제 문제로 맞붙었다. 낯뜨거운 인신 공격 대신 간만에 펼쳐진 정책 대결이 반갑긴 하지만, 철학과 논리가 너무 거칠다. 조세 정책이 지닌 민감성과 휘발성을 무시한 채 눈앞의 표 득실만 따지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토지세'는 모든 토지 소유자로부터 세금을 걷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자는 안이다. 지난해 경기연구원에서 낸 관련 보고서를 찾아봤더니, 1주택 보유 4인 가구의 득실이 갈리는 지점은 집값 10억3000만원이었다(세율 1%에 1인당 연 68만원 기본소득 지급 가정).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86%의 가구가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많다. 보고서대로라면 이런 좋은 정책, 왜 진즉 안 했나 싶다. 집값도 낮추고, 투기와 불로소득도 없애고, 불평등도 줄어든다. 세율을 올릴수록 긍정적 효과는 더 커진다는 게 보고서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점은 쏙 빼놓았다. 기업 경쟁력 약화, 생산시설 해외 이전, 서울·수도권 주택 보유자의 반발 등 예상되는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다. 이 후보는 "토지 보유 상위 10%에 못 들면서 손해 볼까봐 이에 반대하는 것은 악성 언론과 부패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고 했다. 거친 말도 거슬리지만, 조세 저항에 대한 조야한 인식이 더 놀랍다. 10%의 반발쯤이야 90%의 힘으로 누르면 간단히 진압된다는 말일까. 지구 위 단 한 나라도 못 해본 실험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담대함인가, 무모함인가.

윤석열 후보의 '종부세 폐지론'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집값 폭등으로 종부세의 문제점이 도드라졌고,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부세는 부동산 불평등을 방치해서는 우리 공동체가 위험해진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다. 반발과 갈등도 컸지만, 그 정신을 통째로 부정할 순 없다. 세대별 합산 방식이 위헌이라는 판정을 받았으나 제도 자체는 합헌이라는 결론이 났다.

1주택 보유자에 대한 배려 등 보완은 좋다.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러나 "더는 종부세 폭탄 걱정 안 하게 하겠다"는 약속은 너무 나갔다. '부담 안 되는 세금'은 '짜지 않은 소금'이란 말만큼 형용모순이다. 종부세 개편론의 타깃은 좁다. 인구로는 2%, 가구 수로는 4%도 안 된다. "부자만 보이냐"는 민주당 비판은 일리가 있다. 부동산 정책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일관성 부족이다. 정권마다 바뀌면서 "버티면 된다"는 믿음을 키웠다. 제도의 뿌리를 흔들다가 어떤 후폭풍이 불지 모른다.

세금에 대한 생각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세금은 문명사회의 대가"(미국 대법관 올리버 홈스)라는 말부터 "선한 세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윈스턴 처칠)는 말까지. 양 끝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정치의 몫이다. 삼각돛을 부려 역풍을 헤쳐가는 선장만큼 노련함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 혹은 윤석열 정부는 그런 역량이 있을까.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