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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세상](10) 학교는 교도소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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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수능일이다. 50만 수험생 여러분, 축하드린다. 시험을 잘 보든, 망치든, 어쨌든 축하할 일이다. 길고 긴 12년 '감옥살이'에서 해방됐기 때문이다.

왜 감옥이냐고?

"우리나라에는 담장에 둘러싸인 건물이 딱 두 개 있습니다. 어딜까요? 교도소와 학교입니다. 둘 다 담장 넘으면 큰일 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그런 수감상태에 두고 있습니다. 무려 12년을 말입니다.

요즘 학교 급식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똑같은 옷 입고, 똑같은 급식판 들고, 똑같은 음식을 받아먹는 곳은 학교와 교도소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양계장 닭과 비슷합니다. 갇혀 모이만 먹여지고 있는 닭 신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12년을 자란 아이들에게 졸업 후 '너만의 꿈을 펼쳐라'라고 말합니다. 그건 닭을 풀어놓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훨훨 날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건축가 유현준(홍익대 교수)의 강연 중 한 대목이다. 그는 획일화된 학교 구조가 획일화된 학생을 기르고, 우리 사회를 전체주의로 몰아가고 있다고 통탄한다. 전인교육이 사라진 교육 현실을 학교 건물에서 찾고 있다(유튜브에 가 그의 이름과 '감옥'을 치면 영상을 볼 수 있다. 꼭 보시길 권한다).

″우리나라에서 담장에 둘러싸인 건물이 딱 두개 있습니다. 교도소와 학교입니다.″(유튜브 캡처)

″우리나라에서 담장에 둘러싸인 건물이 딱 두개 있습니다. 교도소와 학교입니다.″(유튜브 캡처)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은 건강한가?

오늘 주역의 눈으로 한국 교육을 보자.

주역 4번째 괘 '산수몽(山水蒙)'을 뽑았다. 산을 상징하는 간(艮, ☶)이 위에 있고, 그 아래에 물을 뜻하는 감(坎,☵)이 있다(䷃). 산 밑에서 미약하게 솟아나는 샘물, 이것이 몽(蒙)괘의 형상이다.

샘물은 아직 미약하다. 계곡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계곡으로 흘러나와 강을 건너 바다에 이르를 것이 분명하다.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아직은 여린 샘이다. 그래서 괘 이름이 '蒙(몽)'이다. 새벽잠에서 막 깨어난 상태, 즉 몽매(蒙昧)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다. 계몽(啓蒙)이다. 샘물이 모여 강으로 나오듯, 어린이들은 교육으로 힘을 길러 사회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산수몽' 괘의 주제는 교육이다.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냐에 대한 교육이념을 담고 있다.

'匪我來童蒙, 童蒙求我'

'산수몽' 괘사(卦辭)는 이렇게 시작된다. '스승이 학생을 찾아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스승에게 묻고 배움을 청해야 한다'라는 뜻이다.

선생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게 아니다. 학생들이 질문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스스로 깨치도록 해야 한다. 능동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스승과 제자가 마음을 나누며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주역은 5000년 전 이미 주도적인 학습, 창의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주역 제4괘, 계몽이 주제다.

주역 제4괘, 계몽이 주제다.

선생님은 어떡해야 할까. '산수몽' 괘사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스승은 삶의 엄격한 모범(型)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은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몸에 익히게 되고, 무지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선생님의 말에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결같아야 한다. 어제 가르침이 다르고, 오늘 가르침이 다르다면 학생들은 헷갈린다. 헷갈리면 깨닫지 못하고, 신념이 서지 못한다. 오로지 올바름으로 학생들을 키워야 한다(蒙以養正).

스승의 가장 큰 미덕은 포용이다. 누구든 뜻을 갖고 다가오는 학생은 포용하고 가르쳐야 한다(包蒙). 차별을 둬서는 더욱 안 된다.

자녀 수능 잘 보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마음은 간절하다.

자녀 수능 잘 보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마음은 간절하다.

공자(孔子)는 주역의 교육 이념을 그대로 실현했다.

'육포 몇장은 최소한 가져와라. 그런 학생을 받아주지 않은 적 없다(自行束脩以上,吾未尝无诲焉)'

'육포(束脩)'는 요즘 말로 치면 학비다. 학비를 내겠다는 건 '내가 배울 의지가 있다'는 최소한의 표현이다. '학생이 스승에게 묻고 배움을 청해야 한다'라는 주역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했다.

학생 간에는 절대 차별을 두지 않았다. 논어(論語)에는 아들에게도 특별 수업이라던가 심화 학습을 시키지 않았다는 일화가 나온다. 친구 교수의 논문에 자기 아들 이름을 공저자로 올리는 '스펙 품앗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주역의 시대에도 '촌지'가 있었나보다. 주역은 돈 있는 자식이라고 봐줘서도 안 된다고 했다.

'見金夫, 不有躬, 无攸利'

'부자를 보면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말라!'

주역은 '돈 앞에 비굴한 선생님과는 결혼하지도 말아라'라는 말로 학습에 돈이 개입하는 것을 경계했다.

주역은 필요하다면 '사랑의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역은 필요하다면 '사랑의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오냐오냐 교육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주역은 필요하다면 매를 들어서라도 교육을 하라고 말한다.

擊蒙,不利爲寇, 利御寇

'때려서라도 어리석음을 깨라. 도적이 된 후 잡기는 어렵다. 도적이 되지 않도록 사전에 막아야 한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아이들을 바로 가르칠 수 없게 된다. 도적이 될 수 있다. 그 후에 바로잡기는 더 어렵다. 필요하면 회초리라도 들어 어릴 때 바로잡아야 한다. 사랑의 매다. 스승은 그렇게 너그럽게 포용하되, 스스로 엄격해야 한다.

건축가 유현준의 말대로 획일화된 학교가 사회 다양성을 막고 있다. 학교는 절대 교도소가 아니다! 그럼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언제나 예산을 탓한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를 먼저 바꿔야 한다. 주역 '산수몽' 괘에 주목하는 이유다.

핵심은 스승과 학생이 학습의 뜻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수몽' 괘는 이를 '지응(志應)'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자발적 학습 열정을 유도하고, 스승은 삶의 모범을 제시해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그런 교육이어야 한다.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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