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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마다 피 튀기는 대선 전쟁...주역으로 본 '왕'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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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다. 대규모 군단을 짜고, 지휘부를 구성하고, 적과 대치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게임. 한국 대선판은 그 어떤 총칼의 전쟁보다 더 참혹하고 무서운 말(言)의 전장(戰場)으로 변해가고 있다.

[주역으로 본 세상](11)

'전쟁은 생사를 가른다. 그러니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兵者, 死生之地, 不可不察也)'. 손자병법은 그렇게 시작한다. 점점 전쟁처럼 바뀌고 있는 우리 대선도 다르지 않을 터다. 권력 다툼에 국론은 쪼개지고, 국민의 삶은 쪼그라들고 있다.

영화 '핵소고지'의 한 장면.

영화 '핵소고지'의 한 장면.

그런데도 대선 전쟁은 5년마다 반복된다.

제왕(帝王)적 권력 구조가 낳은 현상이다. 일단 당선되면 제왕보다 더한 권력을 누린다. 수 천개 자리도 내 차지다. 독식 구조다. 그러니 빼앗기지 않으려고, 빼앗으려고 피튀기게 싸운다. 왕위 쟁탈전이다.

누가 '왕'이 될 것인가?

오늘 주역 7번째 괘 '지수사(地水師)'를 뽑았다. 땅을 상징하는 곤(坤, ☷)이 위에 있고, 물을 뜻하는 감(坎, ☵)이 아래에 있다(䷆). 땅이 물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땅속의 물은 응집되어 있다. 서로 모이고 합쳐 샘이 되고, 분출한다. 이런 자연 현상을 인간 세계로 적용한 게 '지수사' 괘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물이 되듯,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다수의 집단이 된다. 뭉치면 힘이 생긴다. 힘 있는 집단은 군대를 상징하고, 다시 전쟁으로 그 의미가 발전했다. 그게 바로 '師(사)'괘의 형상이다. 흔히 '전쟁의 괘'로 불린다. 군 조직 '사단(師團)'에 5000년 전 쓰인 '師'의 뜻이 오롯이 남아있다.

주역은 '지수사' 괘상(卦象)을 이렇게 설명한다.

'地中有水師, 君子以容民畜衆'

'땅속에 물이 있는 형국이 바로 師(사)괘다. 군자는 이로써 백성들을 포용하고, 대중을 양육(養育)한다.'

나라의 리더는 백성(衆)의 아픔을 보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 항시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힘의 원천이 백성, 군중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있어야 정치력도 생기고, 전쟁도 치를 수 있다.

땅이 물을 머금은 형상이다.

땅이 물을 머금은 형상이다.

누가 왕이 될 것인가? 주역은 역시 '군중'에서 답을 찾는다.

'能以衆正, 可以王矣!'

'능히 군중을 이끌어 천하에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면, 그가 곧 왕이 될 것이다!'

주역은 '정의(正義)'로써 군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기에 첫 번째 전쟁 승리의 요건으로 '정(正)'을 꼽았다.

무릇 전쟁에는 대의가 있어야 한다. 주역은 이를 '貞(정)'이라고 했고, '貞은 정의를 뜻한다(貞,正也)'고 설명했다. '정의'의 기치를 내걸라. 그리하여 불의를 내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라. 그래야 군중은 따라 움직인다.

'사회 정의'라는 이슈를 선점하는 후보, 그가 승리할 것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는 지휘관이다.

전쟁은 왕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 군왕의 군 통수권을 위임받은 사람이 현장에서 지휘한다. '지수사' 괘는 그를 '장인(丈人)'이라고 표현했다. 장인은 '능력 있고, 덕행이 바른 사람'이다. 누가 더 유능하고, 존경받는 사람을 군사령관으로 임명할 수 있느냐에 승패가 달렸다.

'長子帥師, 弟子輿尸, 貞凶'

'뛰어난 인재에 전쟁을 맡기면 패하지 않을 것이요, 어설픈 사람에게 맡기면 수레에 시체만 가득 싣고 돌아올 것이다.'

자칫 무자격자를 최고 사령관 자리에 앉히면 시체만 실어올 뿐이라는 경고다. 임명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왕은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최고 지휘관에게 신뢰를 표시해야 한다(王三錫命'). 그래야 영(令)이 서고, 효율적인 통솔이 가능하다.

누가 더 능력 있고, 존경받는 인물을 선거 지휘관으로 영입하느냐에 승패가 달렸다.

셋째 군율이다.

지금 표현으로는 군기다. 첫 효사(爻辭)는 이렇게 시작한다.

'師出以律, 否臧凶也'

주역은 '군대를 움직임에 있어 먼저 기율을 엄정하게 하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때 승세를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패배(凶)할 것이라는 경고다.

기율은 대선 전쟁에서도 중요하다. 진영 내 자리다툼이 있어 잡음이 새 나온다면 그건 기율이 서지 않은 탓이다. 제멋대로 자기주장을 언론에 떠벌려 혼란을 가져오는 것도 기율의 문제다. 그런 선거 조직에는 자리를 노린 파리 떼들만 날아들 뿐이다!

내부 단속을 잘할 수 있는 자, 승리한다.

주역 '지수사' 괘는 출병 전 군율이 잡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역 '지수사' 괘는 출병 전 군율이 잡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역의 이런 전쟁관은 '손자병법'에 그대로 이어진다.

병법의 대가 손자(孫子)는 전쟁에는 5가지 승리 요소가 있다고 했다. 하늘(天)의 기운과 땅(地)의 형세를 살피는 것 외에 다음의 3가지를 추가로 꼽았다.

첫째는 도(道)다. 군주와 백성의 통일된 의지다. 주역에서 말한 '貞', 곧 '정의'로써 백성들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중은 명분 없는 전쟁에 따라나서지 않는다.

둘째는 장(將)이다. 주역의 '장인(丈人)'과 같다. 손자는 그 요건으로 '지혜롭고(智), 신뢰할 수 있으며(信), 어질고(仁), 용기가 있고(勇), 위엄이 있어야 한다(嚴)'고 지적했다. '능력 있고 덕행 바른 사람'에서 더 구체화됐다.

셋째는 법(法)이다. 조직 편제와 군율 관리다. 엄격한 관리가 없다면 승리는 요원하다. 주역의 출사이율(出師以律)과 맥을 같이한다.

총칼로 싸우는 들판의 전장에서도, 말(言)과 말이 부딪히는 정치판 대선전에서도 모두 통하는 승리 요건이다. 전쟁의 모습은 바뀌었지만, 이를 관통하는 원리는 5000년 세월에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왕이 된다는 거야? 답은 이미 위에서 언급했다.

'能以衆正, 可以王矣!'

정의의 이름으로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후보, 그가 바로 주역이 지목한 차기 대통령이다.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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