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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세상](9)'오피스 누나'를 화나게 하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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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불안하다. 툭하면 터지는 길거리 폭력, 밤길이 무섭다. 데이트 폭력으로 애인의 발길질에 울고, 가정 폭력으로 남편의 주먹에 멍든다. 회사 여직원은 마초 상사들의 성희롱에 시달려 눈물을 쏟고, 대학원 여학생은 교수의 음란한 손길에 몸을 사린다.

“오피스 누나? 제목이 확 끄는데…”

정당 대권 후보 입에서 툭 하고 나온 말. ‘천박한 성 인식’을 반영한다는 비난이 터져 나온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저러니…. 많은 이들이 혀를 찬다.

권력층의 삐뚤어진 '성 인식'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충남지사, 부산시장, 그리고 서울시장…지금도 고위직 어느 사무실에서는 성폭력이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권력이 자제력을 잃게 되면 소인배 무리는 더 기탄없이(无忌憚) 날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나.

도덕, 윤리 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지부터 가르쳐야 한다. 주역을 펼치는 이유다.

주역 두 번째 괘 ‘곤위지(坤爲地)'를 뽑았다. 음효(--)가 여섯개 이어졌다(䷁). 제1괘 '건위천(乾爲天)'이 하늘, 남성을 상징한다면 두 번째 '곤위지' 괘는 대지, 여성을 의미하고 있다.

땅, 여성을 상징한다.

땅, 여성을 상징한다.

하늘(乾)은 창조의 존재다. 햇볕을 내리쬐고, 비를 뿌리고, 바람과 천둥을 일으킨다. 그 강건(剛健)함은 언제나 늘 그렇듯 끊임이 없다. 하늘의 생명력은 만물을 생성(生成)하게 한다. 그게 '건위천'의 괘상이다.

땅은 포용과 조화(配合)의 덕을 가진다. 대지는 하늘이 준 햇볕과 비를 온전히 받아들여 만물을 포용하고 키워낸다. 은덕(恩德)의 넓고 큼에 한계가 없다. '곤위지'의 괘상은 '대지의 무한한 포용력에 안겨 만물은 성장한다'고 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 그래서 땅이 비천하다? 전혀 그렇지 않다. 하늘의 창조력은 대지의 포용력이 있기에 완성된다. 음이 있어야 비로소 우주 만물 완전체를 이룬다.

'孤陽不生, 獨陰不長'
'양(陽)만으로는 생성되지 않으며, 음(陰)으로만은 생장이 없다.'

인간 세상도 다르지 않다. 여성이 없으면 이 사회는 마초들이 들끓는 횡포한 사회가 될 뿐이다. 아프리카 밀림에 수사자만 있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하다.

나라 리더(陽)가 아무리 뛰어나면 뭐하나, 보좌진(陰)이 받쳐주지 못하면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회사 CEO(陽)의 비전은 직원(陰)들의 협력이 있을 때라야만 실적으로 연결된다. 가정을 부양하는 남편(陽)의 책임은 아내(陰)의 알뜰함으로 완성된다.

그런데도 우리 여성들은 밤길을 무서워해야 하고, 상사 성희롱에 눈물을 쏟는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은 '오피스 누나'를 운운한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회의 일면이다.

여성의 상징은 유순(柔順)이다. 부드럽고 순종적이다. 그러나 주역은 여성을 마냥 부드럽고, 무작정 복종(盲從)하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주역은 암말(牝馬)을 들어 여성을 비유한다. 암말은 항상 수말을 따른다. 한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지킨다(牝馬之貞). 그러나 맹종하지 않는다. 주인이 이리 가라면이리 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는 소(牛)와는 다르다. 수말의 뒤를 따르되 자신 자신의강함을 잊지 않는다.

주역 '곤위지' 괘는 암말을 비유로 대지, 여성 등을 설명한다.

주역 '곤위지' 괘는 암말을 비유로 대지, 여성 등을 설명한다.

그래서 주역이 그려내는 여성은 '유순'이 아닌 '유강(柔剛)'이다. 부드럽지만 안으로 굳센 힘을 가진 존재다. 자리가 주는 힘을 악용해 부하 여직원을 괴롭히는 남정네보다 훨씬 강하다.

여성은 차분하게 응시하고, 미래를 본다.

'곤위지' 괘의 첫 효사(爻辭)는 '서리를 밟고는 겨울이 멀지 않았음을 알아차린다(履霜堅氷至)'고 했다. 변화의 흐름에 민감하고, 위기를 감지하는데 탁월하다. 남성이 사냥을 위해 들판을 헤매고 있을 때 여성은 차분히 앉아 미래를 응시한다. 경계하고, 준비하는 존재가 바로 여성이다.

주역은 여성을 주머니에 비유하기도 한다.

주머니는 입구가 작고 속이 깊어야 한다. 그래야 물건을 많이 담고, 담긴 물건을 흘리지 않는다. 바지 주머니도 입구가 작고 속이 깊어야 겨울철 손을 더 따뜻하게 할 수 있다. '주머니를 졸라매니 허물이 없다(括囊无咎)'는 네 번째효사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입구가 크고 속이 얕은 주머니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술술 새기만 한다. 아는 것 없이 떠벌리기만 하는 사람이 쓸모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여성은 더 위대하다.

'곤위지' 괘 마지막 효사는 '음이 지나치게 강하게 되면 반드시 양과 겨루어 싸우게 된다'고 했다. 두 마리 용이 들판에서 싸우는 형상이다(龍戰于野). 음양의 조화가 깨져 서로 대치하게 되면 '검고(하늘), 누런(땅)색 피가 튀는 혈전이 벌어진다(其血玄黃)'라고도 했다.

여성이 포용과 조화의 힘을 포기할 때 사회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다. 우리 사회에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이를 보여준다.

여성을 화나게 하지 마라! 여성이 마음껏 포용과 조화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받들고, 존중하라!

주역이 가르치는 양성평등 교육의 핵심이다.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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