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 소비 기지개 켤까, 백신 접종 1300만이 준 착시

중앙일보

입력

14일 오후 인천국체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들. 뉴스1

14일 오후 인천국체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들. 뉴스1

주부 박모(61)씨는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백신을 맞았다. 접종 순서가 다가오자 미루지 않고 바로 신청했다. 박씨는 "지인들과 카페나 음식점에서 편하게 어울리고 싶어 앞장서 맞았다"며 "여름 휴가 때 국내 바닷가 펜션을 장기간 빌려 해외여행을 간 기분이라도 내고 싶다"고 말했다.

15일 국내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자 수가 1300만명을 돌파하면서 잔뜩 움츠러든 소비가 기지개를 켤지 주목된다. 7~8월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여행, 면세점, 의류, 화장품 등 소비는 이미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다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완전한 회복에 이르기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통계는 이미 청신호를 켰다. 통계청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 판매액 지수가 120.5를 기록해 1995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소매 판매액 지수는 2015년 평균을 100으로 놓고 전달과 비교하기 쉽게 계절 변수를 조정해 백화점ㆍ슈퍼마켓ㆍ자동차 판매점 등의 소매 판매 실적을 지수화한 수치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백신 접종 확대에 따라 소비 심리가 개선됐고, 각종 소비 지원 정책까지 맞물려 소비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백화점(30.6%), 면세점(51.6%), 화장품(15.5%) 등 소비가 폭등했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를 극복한 뒤 소비 1순위는 여행 및 레저, 2순위는 신발ㆍ의류ㆍ화장품 같은 소비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적으로 유통업계에선 립스틱, 아이 브로우 같은 색조 화장품까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출 시 많이 바르는 화장품은 대면 소비 추세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 품목”이라며 “1년 전 타격에 따른 기저효과(비교 대상 수치가 지나치게 낮거나 높아 나타나는 통계 착시 현상)가 작용했지만, 소비심리 개선세가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4월 폭증한 여행ㆍ레저 온라인 소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4월 폭증한 여행ㆍ레저 온라인 소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정부도 소비 회복을 거들었다. 지난 9일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양호한 국가와 상호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ㆍ여행안전권역)’ 협약을 맺어 이르면 7월부터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은 자가 격리 없이 단체 해외여행을 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괌ㆍ대만ㆍ태국ㆍ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부터 단체 관광 빗장을 풀겠다는 취지다. 이들 국가에서 한국으로 여행을 올 수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점차 늘어나면서 내수 진작 효과가 기대된다.

정부는 또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한 관광ㆍ숙박ㆍ영화ㆍ전시ㆍ공연ㆍ외식 등 8개 소비쿠폰 정책을 하반기 중 재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소비가 워낙 쪼그라든 만큼 ‘가뭄에 단비’ 수준이고 완전한 해갈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분간 기저효과에 따른 착시를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트래블 버블 협약을 하나둘 체결하면 올 하반기부터 여행 산업이 슬슬 살아날 것”이라면서도 “일러야 내년 상반기, 늦으면 하반기는 돼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주점에서 여럿이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등 과거의 대면 소비 패턴이 많이 바뀌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등 새로운 소비 행태가 ‘뉴노멀(New Normalㆍ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며 “소비가 100% 회복하는 데까지 시일이 오래 걸릴 수 있고, 회복하더라도 과실이 온전히 대면 소비 업종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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