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안 하고, 늦추고, 돈 있어야 한다…'부부의 날' 씁쓸한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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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남매를 낳은 박성용·이계정씨 부부가 지난 3일 경남 의령군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 송봉근 기자

10남매를 낳은 박성용·이계정씨 부부가 지난 3일 경남 의령군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 송봉근 기자

‘부부의 날’의 주인공인 부부가 연(緣)을 맺는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결혼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늦추고, 경제력이 떨어지는 남성일수록 결혼하기 어려운 경향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5월 21일 부부의 날은 엄연한 법정기념일이다. 민간단체 ‘부부의 날 위원회’가 2003년 낸 청원을 국회가 받아들여 2007년 기념일로 제정했다. 부부가 서로 소중함을 깨닫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자는 취지에서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두(2)명이 하나(1)가 된다는 속뜻도 담았다.

하지만 기념일을 기릴 부부의 증가세가 크게 줄었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4000건을 기록했다. 혼인 건수가 역대 최저를 기록한 2022년(19만2000건) 대비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앤데믹(풍토병)으로 바뀐 기저효과(base effect) 때문이다. 임영일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코로나19가 확산한 기간 뒤로 미뤘던 결혼이 지난해 몰리면서 혼인이 다소 늘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혼인 건수가 전년 대비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연간 혼인 건수 증가율은 1.0%지만 7월(-5.3%), 8월(-7.0%), 9월(-12.3%), 11월(-4.4%), 12월(-11.6%)은 마이너스였다.

착시를 걷어내고 나면 혼인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1996년 연간 40만건대를 넘던 혼인 건수는 1998년 30만건대로 줄었다. 2016년 20만건대로 감소하더니 2021년부터 3년 연속 20만건을 밑돌았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그나마 결혼 시기도 늦추는 추세다.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4.0세, 여자 31.5세로 나타났다. 역대 최고령 신혼부부다. 1년 전보다 각각 0.3세, 0.2세 올랐다. 20대 후반 남성(17.9%)과 여성(28.8%)끼리 결혼하는 풍경이 ‘소수파’다.

결혼을 결심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남성의 경제력’이란 점도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노동과 출산 의향의 동태적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연령층에서 남성의 임금 수준이 오를수록 혼인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20대 중후반(26∼30살) 남성의 경우 소득 하위 10%(1분위)의 혼인 비율이 8%지만, 소득 상위 10%(10분위)는 혼인 비율이 29%였다. 30대 초중반(31∼35살) 남성은 소득 1분위 혼인 비율이 31%, 소득 10분위는 76%로 벌어졌다.

결혼도 선택으로 보는 경향은 결혼의 ‘편익’이 줄어든 반면, ‘비용’은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입장에서 경제 활동 참가가 크게 늘었는데도 불구하고 남녀 가사노동 분담 비율은 요지부동이다. 결혼하면 승진 등 노동시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많다. 25~39세 여성 중 기혼자 비율이 1991년 87%에서 2021년 43%로 떨어진 이유 중 하나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출산으로 이어지는 입구다. 출생아 중 결혼을 통한 비율이 97.5%(2020년 기준)라서다. 입구가 좁아진 만큼 세계 꼴찌 수준의 출산율도 당분간 끌어올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초·중·고생 7718명을 설문한 결과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2년 73.2%에서 2023년 29.5%로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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