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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주는데 대학은 늘었다, 정책 실패가 부른 지방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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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부산교대 본관 앞에서 부산대와 통합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부산교대 총동창회 회원들이 차정인 부산대 총장의 진입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부산교대 본관 앞에서 부산대와 통합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부산교대 총동창회 회원들이 차정인 부산대 총장의 진입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밀실에서 이뤄지는 통폐합 결사반대한다.”

지난 19일 오전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위치한 부산교대. 부산교대 총동창회 동문들이 본관 쪽으로 향하던 차정인 부산대 총장을 막아섰다. 이날 예정된 부산교대와 부산대 간 통합 양해각서(MOU) 체결을 막기 위해서였다. 같은 시간 본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의 손에는 ‘LISTEN TO US(우리 얘기를 들어달라)’라는 내용이 적힌 피켓이 들려져 있었다. 동창회와 재학생들은 “(두 대학의) 통폐합은 초등교육 말살”이라며 “아이들 발달에 맞게 전인교육을 하는 교육대는 종합대학인 부산대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거센 반발에 차를 돌린 차 총장은 결국 이날 오후 서류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지방대 위기] ③‘우후죽순’ 허가하고 평가·지원 홀대

부산교대 측은 양해각서 체결 후 “폭넓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종합 교원을 양성하기 위한 변화”라고 밝혔다. 하지만 두 학교의 통합 이면에는 학령인구(만 6~21세) 감소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학령인구가 줄어 교원 취업률이 떨어지면 다른 지방대처럼 정원 미달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이미 올해 대다수 지방대가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함에 따라 곳곳에서 통폐합을 추진하고 나선 상태다.

학령인구 ‘243만명’ 줄어드는데…정원감축은 지방만

학령인구 감소에도 늘어난 일반대학.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학령인구 감소에도 늘어난 일반대학.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올해 대규모 정원 미달로 지방대 붕괴 위기감이 확산하면서 정부의 교육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학령인구 급감이 예측됐으나 되레 대학 허가가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28일 통계청의 '2011년 장래인구 추계'를 보면 국내 학령인구가 2010년 1001만명에서 2021년엔 758만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국 대학 수는 6개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일반대학 수는 179개에서 191개로 오히려 12개가 늘었다. 시야를 넓혀 2003년(169개)과 비교하면 22곳이나 많아졌다. 정부가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해 2000년대 초부터 정원 줄이기에 나섰지만, 대학 허가에 대해선 백안시 한 셈이다. “1996년 대학설립 자율화 이후 정부의 보완대책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대학생 정원 감축 정책을 펴면서도 지방대 정원 위주로만 줄인 것도 지방대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 감소로 인해 지방대 재정이 먼저 쪼그라들었고, 학생에 대한 교육 투자가 줄자 수도권대와 경쟁력 격차가 벌어지는 악순환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2008~2013년 3만6164명의 정원을 감축했지만, 정부 재정지원제한 대학 등의 70~80%가 지방대였다”며 “2013~2018년 감축 인원 6만614명 중 76.7% 역시 지방대”라고 설명했다.

대학평가 불리→재정지원 감소→경쟁력 하락 

수도권대와 지방대 일반지원사업 지원액 차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수도권대와 지방대 일반지원사업 지원액 차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상당수 지방대는 “대학평가 기준 자체가 지방대에 불리하게 설계됐다”는 입장도 보인다. 교육부의 2018 대학기본역량진단 편람'에 따르면 대학평가엔 ▶학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전임교원·교사 확보율 ▶교육비 환원율 ▶교육과정·강의개선 등 20개 기준이 적용된다. 이중 지방대가 가장 취약한 기준으로 꼽는 건 신입생 충원율이다. 날로 지방대의 신입생 유치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평가 배점이 2015년 8점→2018년 10점→2021년 20점으로 되레 커진 탓이다. 교육 당국은 비수도권대학의 충원율 만점 기준을 0.74점 낮춰주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분위기다.

 교육부가 올해부터 대학기본역량진단의 '예비평가' 성격으로 진행하는 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 기준. [교육부]

교육부가 올해부터 대학기본역량진단의 '예비평가' 성격으로 진행하는 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 기준. [교육부]

대학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등급에 따라 정부의 일반재정지원이나 특수목적지원사업, 국가장학금 지원 등에서 부분적으로 제외된다. 이 경우 지방대 스스로 정원을 감축하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지방대의 재정ㆍ경쟁력이 취약해지고 이것이 다시 학생 충원에 대한 어려움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으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교연이 2019년 기준 정부의 일반지원사업을 분석한 결과, 수도권 대학에 돌아가는 지원액은 한 곳당 약 225억원으로 지방대 한 곳(121억원)의 2배에 달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교육부는 향후 재학생이 학교에 계속 남아있는 비율인 ‘유지 충원율’까지 들여다볼 계획이어서 지방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며 “수도권으로 편입해 떠나는 재학생들이 많은 현실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는 게 지방대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지방대 경쟁력, 자구 노력 전제돼야”

학령인구 감소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학령인구 감소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반면 “지방대가 경쟁력을 갖추려는 자구 노력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여론도 높다. 대학 운영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취업률 등이 미달하는 대학에 지원을 더하자는 건 부실기업에 계속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교육 당국의 입장이어서다. 교육부 관계자는 “경쟁력 없는 사업은 줄여야 한다는 구조조정 노력이 전제돼야 투자도 가능한 것”이라며 “입학 정원을 줄이면 학생 1인에게 투자가 집중돼 오히려 '교육비 환원율' 지표는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대학평가·지원 시스템이 사회적 약자를 핍박하는 것에 가깝다”는 입장을 보인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부터 지원을 제한한다면 벚꽃 피는 순서가 아니라 군 단위 소도시부터 대학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지방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지역 내 여러 대학 혹은 수도권대와 지방대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공동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분야별로 경쟁력을 갖춘 대학에서 전공을 이수할 수 있다. 대교연은 “지방대뿐만 아니라 (수도권을 포함한) 전체 대학의 정원을 균형적으로 줄여야 지방대 고사를 막을 수 있다”며 “학생 수 감소가 대학 재정수입 감소로 이어지지 않게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원·이은지·김윤호·최종권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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