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루 400만 접종" 백신 속도전에도 확산세 못 막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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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몇 달이 고통스러울 것이란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새로운 버전의 코로나바이러스는 팬데믹의 종식을 늦출 것이라고 위협한다.”

백신 효과 떨어트리는 남아공 변이 지역감염 서울서 첫 확인

뉴욕타임스(NYT)가 3일 보도한 내용의 일부다. NYT는 “현재 대부분의 백신은 변이에 효과적으로 보인다”면서도 “공중 보건 관계자들은 바이러스가 면역 반응에 저항력이 강해져,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거나 심지어 새로운 백신을 맞아야 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과학자들은 결국 접종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여전히 더 진화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미국과 다른 지역에서의 접종은 가능한 한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이 확산에 곳곳서 환자 급증 

전 세계 곳곳에서 백신 접종 속도전을 벌이고 있지만, 전파력이 강한 변이가 강타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선 백신 효과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관련 변이 바이러스가 지역사회에서 전파된 사례도 처음 확인됐다.

미국에선 3일 하루 신규 접종 건수가 400만회 이상으로 신기록을 썼다. 1월 중순 80만회에서 3월 초 200만회까지 늘더니 최초로 400만회를 넘어섰다. 코로나 백신을 한 번이라도 맞은 사람은 1억명을 넘는다. 인구의 30% 이상으로, 3명 중 1명은 최소 1회 접종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신규 환자는 여전히 6만~7만여명 나오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변이는 미국 신규 사례의 약 27%를 차지했는데 2월 초에는 1%였다고 NYT는 전했다. 변이가 확산한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에서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플밸리에 있는 '프로비던스 세인트 메리 메디컬 센터'에서 접종받은 시민들이 대기하며 이상반응을 관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플밸리에 있는 '프로비던스 세인트 메리 메디컬 센터'에서 접종받은 시민들이 대기하며 이상반응을 관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에서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의 확산세가 두드러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염력이 더 강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가 코로나 3차 유행의 주범”이라며 “유럽대륙 전체에서 영국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최근 2주간 프랑스 내 신규 환자는 하루 평균 3만8000건으로 55%가량 증가했다. 독일에서도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을 주도하면서 같은 기간 신규 환자가 75% 늘었다. 독일에선 신규 환자 가운데 변이 감염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달한다. FT는 “EU(유럽연합)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독일에서 3월 중순 이후 약 1000명 이상의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이런 추세라면 4주 안에 한계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FT는 “백신 도입이 지연되면서 27개 회원국이 대유행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했다”며 “이스라엘, 영국, 미국과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EU 국가의 평균 접종률은 12% 정도다. 중국과 러시아 백신을 독자적으로 승인해 쓰고 있는 헝가리만 인구의 20% 이상이 최소 한 번의 접종을 끝낸 상태다. EU 집행위원회는 백신 공급량을 1분기 1억700만회에서 2분기엔 3억6000만회로 늘리기로 했다. FT는 “9월까지 EU 전체 성인인구의 70%인 약 2억5500만명을 접종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이라며 EU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회원국들이 백신을 적극 맞도록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프랑스 캉브레 병원의 집중치료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1일 프랑스 캉브레 병원의 집중치료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변이 퍼지는데 누적된 피로감

변이도 문제지만, 접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의 방역 태세가 느슨해지는 점도 환자 급증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바이러스 확산에 제동을 걸기엔 접종률이 여전히 낮은 상태에서, 인간의 행동이 여전히 와일드카드(예측 불가능 요인)로 남아있다(영국 가디언지)”는 것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변이 바이러스가 큰 이슈이고, 팬데믹이 오래 가면서 피로감 때문에 경각심이 떨어지면서 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미국에선 3분의 1만 1번씩 접종한 데다 일부 주에서 방역에 비협조적인 영향으로 환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접종률이 50%를 넘긴 영국과 이스라엘에선 변이가 확산하는 데도 어느 정도 방어력이 생기는 것 같다. 변이가 유행은 하지만, 50%가량 접종하면 변이 때문에 백신 효과가 위협받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접종 속도 높이고 방역 하루라도 빨리 강화”

그럼에도 답은 백신 접종 뿐이다. 접종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여기에 더해 적정 규모가 접종을 하기까진 고강도의 방역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바이러스가 변이하는 속도보다 백신 접종으로 면역력을 확보하는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5일 브리핑에서 “3차 유행 이후 경증·무증상 감염 등으로 감염자가 누적돼 지역사회 내에 숨어있는 감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따른 다중이용시설에서의 집단 발생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변이 바이러스는 위험 요인이다. 이날까지 국내서 주요 변이 3종에 감염된 확진자는 누적 330명으로 늘었다. 특히 서울 강서구 직장·가족 감염자 5명이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처음으로 남아공 변이가 지역사회에 전파된 사례다. 남아공 변이는 백신 효과를 떨어트리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만 75세 이상 고령자 대상 화이자 백신 첫 예방접종이 시작된 1일 대전 유성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를 찾은 어르신들이 백신을 접종받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만 75세 이상 고령자 대상 화이자 백신 첫 예방접종이 시작된 1일 대전 유성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를 찾은 어르신들이 백신을 접종받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우주 교수는 “미국과 이스라엘 사례를 보면 결국 인구의 50~60%는 접종해야 지역사회 유행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는데, 백신이 있어야 속도를 낸다”며“정부가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백신 확보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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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영국에서 발견된 변이가 주로 유행하고 있는데, 이 변이에는 대체로 백신 효과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유행 자체가 줄어야 변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접종을 최대한 빠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결국 유행이 증가하는 시기에는 하루, 이틀 조치를 앞당기는 게 장기적으로 큰 이익일 수 있다”며 ”이번 주 안에는 방역 조치 강화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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