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립외교원장의 부적절한 한·미 동맹관<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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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신간 저서에서 한미동맹을 가스라이팅에 비유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9일 시민단체 초청으로 ' 미국 대선결과 분석 및 한미관계 전망'에 대해 강연하는 모습. [중앙포토]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신간 저서에서 한미동맹을 가스라이팅에 비유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9일 시민단체 초청으로 ' 미국 대선결과 분석 및 한미관계 전망'에 대해 강연하는 모습. [중앙포토]

국립외교원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외교관 양성 기관이자 외교안보 정책 및 중장기 전략 등의 연구를 수행하는 기구다. 주요국들과의 전략대화를 통해 한국 정부의 입장과 논리를 전파하는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국립외교원의 역할이 막중하기에 그 수장을 차관급으로 예우하고 경륜과 균형감각을 갖춘 인사를 발탁해 왔다. 그런데 현직 국립외교원장이 신간 저서에서 밝힌 한·미 동맹에 관한 인식은 과연 그가 그런 자리를 맡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이란 저서에서 “한국은 한·미 동맹에 중독돼 왔다. 압도적인 상대에 의한 가스라이팅 현상과 닮아 있다”고 썼다. 가스라이팅은 강자가 약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한다는 뜻의 심리학 용어다. 요컨대 한국은 미국이란 존재 때문에 “상식적·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더 나아가 “한·미 동맹이 출발부터 기울어져 있었다”며 “미국은 35년 (일본) 제국주의를 벗어나게 해 준 ‘해방자’라기보다 실제로는 식민지인을 대하는 새로운 ‘점령군’에 가까웠다”고 썼다. 좌편향 서적의 역사 인식과 다름없다. 이런 인식은 한·미 동맹 해체를 전략 목표로 삼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 원장 역시 “주한미군 철수는 평화체제 구축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썼다. 그가 생각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궁극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상급 부처인 외교부는 파문이 커질 듯하자 “개인적 소신을 밝힌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학자로서야 어떤 입장을 갖든 자유지만 외교안보 담당 공직자가 갖춰야 할 입장과는 정면 충돌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차례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라고 밝힌 것에도 상충한다.

미국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한·미 동맹의 균열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민감한 시기다. 동맹의 한쪽 당사자인 미국 조야에서는 한국에 대한 불신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원장의 저서는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할 것임이 틀림없다.

김 원장은 이 정부에서 외교안보 요직을 차지한 연정(연세대 정외과) 라인인 데다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이다. 그가 2년 전 국립외교원장에 발탁될 때부터 논공행상 인사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우선 저서 파문을 일으킨 김 원장이 신중하지 못한 처신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소신이어서 사과할 게 없다고 생각하면 국립외교원장에서 물러나는 게 맞다. 임명권자인 대통령도 김 원장이 과연 지금의 직책에 맞는 인물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