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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37만 명 공무원을 잠재적 투기꾼으로 간주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부동산 부패청산'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전 공무원의 재산등록 시스템 구축을 지시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부동산 부패청산'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전 공무원의 재산등록 시스템 구축을 지시했다. [뉴스1]

어떻게 이렇게 즉흥적인 발상이 청와대에서 나왔을까. 전 공무원 재산 등록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긴급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재산 등록제를 모든 공직자로 확대해 최초 임명 후 재산 변동과 형성 과정을 상시 점검받는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어느 참모의 제안이었는지 알려진 바 없지만, 이 방안이 실현되면 또 하나의 정책 실패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전 공무원 재산등록 실효성 없고, 행정력 낭비 #투기 근본 해결책은 부동산 정책기조 전환뿐

이 방안은 문제투성이다. 무엇보다 실효성이 거의 없다. 현재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를 보자. 최근 공개된 2021년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 결과를 보면,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보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전시행정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투기 행위를 감시하고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럴 개연성이 있는 현장이나 길목을 지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공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투자 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에 나서지 못하게 막는 장치부터 정교하게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이란 얘기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 137만 명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들 중 대다수 중하위직 공무원은 평범한 수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전 공무원 재산 등록이 추진되자 공무원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내 통장 30만원도 공개되는 거냐. 그러면 나 결혼 못하겠다”는 식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더구나 137만 명의 재산을 등록하려면 막대한 예산과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다. 실효성도 없는 제도에 국민의 세금과 행정력 낭비가 불 보듯 뻔하다. 137만 명의 재산을 등록하면 그 가족까지 대략 600만 명이 재산 감시의 영향권에 들어온다. 부동산거래분석원까지 설치하기로 했으니 국가가 사유재산의 거래를 손바닥 보듯 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도 과연 국민에게 호소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LH 사태에 대해 "윗물은 맑다”고 했던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세종시에서 농지 일부를 대지로 바꿔 땅값이 4배 올랐다고 한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처럼 임대차 3법 직전 임대료를 올린 여야 의원도 한둘이 아니다. 또 문 대통령 자신은 경남 양산에 영농 경력을 ‘11년’으로 적고 형질을 대지로 바꿔 3억5000만원의 추가 이득을 얻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 정권은 전례 없는 혼란의 거대한 몸통이 바로 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현실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한두 번은 실수지만, 25차례의 반시장적 정책이 거듭되면서 초래된 혼란은 실패로 볼 수밖에 없다. 정책 책임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반시장적 대책으로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말고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그것이 이 거대한 혼란의 근본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