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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안락사 선택, 교육수준 높은 부자가 더 많았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73)

옛날엔 오래 사는 것을 오복의 하나로 꼽았다. 당시에는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모두 장수하는 것을 염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살기를 원했을까. 기원 전에는 사람의 수명이 서른이 되지 않았다. 19세기에도 마흔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수명이 20세기에 들어와 의학이 발전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OECD 국가 거의 모든 나라가 80세에 이른다. 불과 1세기 만에 두 배가 늘어난 것이다.

학자들은 건강관리만 잘하면 125세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110세를 넘어 사는 사람이 곳곳에 있다. 그래서 요즘을 100세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오래 살아도 친구와 같이 지낼 수 있어야지 가까운 사람이 모두 떠났는데 자기만 오래 살아있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자식은 70~80세에 죽었는데 나만 100세 이상 산다면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기원 전에는 사람의 수명이 서른이 되지 않았고 19세기에도 마흔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20세기에 들어와 의학이 발전하며 수명이 늘면서 이제는 OECD 국가 거의 모든 나라가 80세에 이른다. [사진 pixabay]

기원 전에는 사람의 수명이 서른이 되지 않았고 19세기에도 마흔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20세기에 들어와 의학이 발전하며 수명이 늘면서 이제는 OECD 국가 거의 모든 나라가 80세에 이른다. [사진 pixabay]

그래선가 얼마 전부터 그저 오래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 하는 물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장수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병을 앓지 않고 자기의 의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65세에 불과하다. 기대수명이 80세라면 15년 정도는 골골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얘기다. 주위를 보면 건강한 노인이 많은데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여러 사람이 생을 마감했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지로 가고 싶은 곳도 가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하며 남의 도움에 의지하여 생을 영위해야 한다면 오래 사는 게 좋은 건만은 아니다. 어쩌면 재앙일 수도 있다. 자신의 용변을 누가 대신 처리한다고 생각해보라. 게다가 고통까지 있다면 차라리 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도 날 것이다. 일찍이 서구에서는 이런 점에 착안해 고통을 감수하며 오래 살기보다는 안락하게 죽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스위스에서는 1942년부터 의사의 도움으로 죽을 수 있는 조력자살을 허용했다. 환자가 스위스 국적이 아니라도 가능하다. 그래서 다른 여러 나라에서 환자들이 스위스로 ‘자살 여행’을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례로 한국인 두 명이 2016년, 2018년 조력자살을 돕는 스위스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975년 식물인간이 된 20대 여성의 죽음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는데 딸의 자연스러운 죽음을 바라는 아버지의 청원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의사는 그녀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안락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유사한 사례가 몇 번 더 있었다. 그리고 1997년 오리건주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을 수 있는 존엄사법이 제정됐다. 존엄사를 채택한 주는 매년 늘어 현재는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몬태나, 버몬트, 워싱턴주 및 수도 워싱턴이 합법화했으며 2018년에는 하와이가 포함됐다.

캐나다에서는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근위축성 경화증 환자의 호소에 의해 안락사법 제정을 놓고 여러 해 검토하다가 2016년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했다. 스위스나 미국, 캐나다 등에서 시행하는 안락사는 의사가 죽음에 이르는 약을 처방하고, 직접 복용하거나 버튼을 누르는 것은 환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처방만 받고 시행을 보류하는 환자도 있다. 연구에 의하면 언제든지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처방만으로도 환자는 위안을 얻었다.

한 평생 쓰는 의료비의 절반을 사망하는 한 달 사이에 쓴다고 한다. 의사에 따라 치료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명분도 있고 병원 수익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사진 pikrepo]

한 평생 쓰는 의료비의 절반을 사망하는 한 달 사이에 쓴다고 한다. 의사에 따라 치료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명분도 있고 병원 수익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사진 pikrepo]

네덜란드는 2000년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법은 안락사 허용을 위해 세 가지 조건 즉, 대상자가 불치의 환자여야 하고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하며 환자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안락사에 동의해야 의사가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스위스 등과 다른 것은 의사가 직접 시행까지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는 1996년 이후 위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2565건의 안락사가 있었던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법이 통과된 것은 그동안 네덜란드에서 관례상 묵인돼온 안락사를 사실상 합법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돼 시행 중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안락사법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 안락사법 제정을 우려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의료인이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범죄를 저지를 경우와 가난한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택하는 경우를 염려해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를 보면 후자의 염려는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상과는 달리 교육 수준이 낮고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가난한 환자보다 오히려 교육을 많이 받고 소득이 높으며 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의사조력자살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 중 85%가 자기 결정권과 삶의 질 상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죽고 싶다는 소망을 결정적인 이유로 꼽았다.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법 도입이 공론화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다른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소수자의 호소에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한 사람이 평생 쓰는 의료비의 절반을 사망하는 한 달 사이에 쓴다고 한다. 의사에 따라서는 현재의 치료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명분도 있고 병원 수익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특정 치료를 유보하거나 중지하는 것은 의사도 심적 갈등이 크게 마련이다. 실제로 일본의 예를 보면 임종기의 환자를 통한 매출이 전체 병원 매출의 20%가 된다고 한다. 만약 20%의 매출이 줄어든다면 어느 기업이라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환자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생명만 연장할 뿐이지 환자의 안녕과는 무관한 치료를 계속할수록 몸과 마음이 지치고 자칫 파산하거나 환자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수 있다.

몇 번의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환자가 스위스에 가서 생을 마감한 사례가 있다. 그는 서울대에도 유학을 왔던 50세의 일본 여성이다. 다계통 위축증이란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병을 진단받고 실망한 끝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마침내 두 언니와 함께 스위스로 가서 의사조력자살로 소원을 이룬다. 그의 죽음과정이 책으로 나왔는데 제목이 『11월 28일, 조력자살』이다. 여기서 11월 28일은 그가 의사의 도움으로 세상을 하직한 날이다. 책에는 언어 소통의 어려움과 비용, 동반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 등 외국인 특히 동양인이 느끼는 애로사항 등이 표기되어 있다.

스위스의 의사조력자살을 돕는 단체 디그니타스에 따르면 한국인 107명이 위와 같은 방법으로 죽기 위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요즘처럼 코로나 사태로 해외여행이 제한될 때에는 그곳에 가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왜 우리나라를 두고 굳이 외국에 가서 그런 선택을 해야 할까.

사람은 태어날 때 주위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죽을 때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웃은 부모님을 병원 중환자실이나 요양원에 모시면서도 자신은 그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상황의 변화가 없다면 그 역시 똑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스위스식 안락사가 아니더라도 가정형 호스피스의 활성화 등 다른 대안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남의 일처럼 여기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본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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