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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가난한 엄마의 가르침이 경영 원칙 된 미용 기업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71)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인생수업'에서 우리 인간을 멀리 떨어진 별에서 지구로 수업하러 온 존재라고 표현했다. [사진 책 인생수업 표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인생수업'에서 우리 인간을 멀리 떨어진 별에서 지구로 수업하러 온 존재라고 표현했다. [사진 책 인생수업 표지]

시사주간지 타임이 20세기 100대 사상가로 선정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평생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호스피스 의사다. 그는 유작이 된 『인생 수업』에서 우리 인간을 멀리 떨어진 별에서 지구로 수업하러 온 존재라고 표현했다. 즉 인생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학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교육을 받고 본향으로 돌아가는데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사람은 미흡한 수업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고 한다. 어찌 보면 불가에서 말하는 환생과 유사하다.

생을 돌아보니 그의 얘기대로 이곳 지구에 살며 여러 방면의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수업을 받았다. 주로 학교에서 받았지만 어떤 때는 부모에게, 그리고 어떤 때는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동네 이웃끼리도 그런 지혜를 나누려고 7년 전 분당에 어른을 위한 학교를 세웠는데 퀴블러 로스 박사의 글이 생각나 학교 이름을 ‘아름다운인생학교’로 정했다. 지구라는 인생학교에 수업하러 온 존재라면 가능한 아름다운 추억을 안고 갔으면 해서 붙인 이름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 ‘50+인생학교’, ‘부천인생학교’, ‘화성인생학교’ 등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인생학교를 교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몇 편의 저서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한 석학이다. 그의 책을 보면 얼마나 박식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인생에서 정작 필요한 지식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오히려 학교 밖에서 유익한 지식을 습득했다는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 역시 학교 밖에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 특히 은퇴 후 의료인들과 국립암센터에서 이수한 호스피스 전문과정은 학교 교육을 포함해 지금까지 배운 수업 중 가장 잘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통해 그동안 중요하다고 여겼던 가치가 전혀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일전에 미국 아미쉬 마을을 방문했을 때다. 알고 보니 그들은 정규 학교 교육을 중등과정에서 끝낸다고 한다. 그 후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용교육을 각각 상황에 맞게 배운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주기율표라든가 미적분공식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되겠다면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실용교육이나 인성교육이 더 필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처신을 잘못해 제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학력만 높다고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방끈이 짧은 노인에게 인생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동네 미용실로 시작해 미용업계 1위에 오른 준오헤어 강윤선 대표의 어머니 이야기다. 어머니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한 분이었다. 한글도 80세가 되어 교회에서 처음으로 배웠다. 강 대표는 80세 노모가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쓴 ‘윤이야 사랑해’란 메모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전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어머니였지만 딸은 어머니가 늘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사람 사는 방식을 제대로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늘 주변 사람들을 챙겼다. 가족뿐 아니라 동네 불쌍한 사람들을 데려다 밥을 해 먹이고 형편이 더 어려운 친척을 데려다 몇 달씩 같이 살기도 했다. 어머니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네가 너의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사람들과 잘 지낼 수가 없다. 그러려면 반드시 양보해야 한다는 게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이는 강 대표가 회사를 경영하는 원칙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용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다.

덴마크 작가 말레네 뤼달이 내한해 강연한 적이 있다. 그가 코펜하겐에 사는 친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데 21세 된 아들이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느냐고 물으니 ‘청소부’라는 자랑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이웃들을 위해 환경을 깨끗이 해주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만약 청소부가 없다면 매일 쏟아지는 쓰레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가 편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청소부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아이가 청소부가 되겠다면 기뻐할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동창 중에 방송국 PD를 하다가 퇴직 후 춘천에서 인문학 카페를 운영하는 후배가 있다. 그는 평소 명함을 하나 더 갖고 다녔는데, 명함에는 ‘지구수리공’이라는 직책이 새겨 있다. 그게 어떤 일이냐고 물었더니 우리 지구가 인간으로 인해 너무 많이 망가져 있어 좀 수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작명한 것이라 한다. 아마 덴마크의 젊은이도 그처럼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운동장에 잔디를 까는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덴마크 작가 말레네 뤼달이 코펜하겐에 사는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21세 된 아들이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청소부’라는 자랑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단다. [사진 pixnio]

덴마크 작가 말레네 뤼달이 코펜하겐에 사는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21세 된 아들이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며 기뻐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청소부’라는 자랑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단다. [사진 pixnio]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이동을 삼가고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에서 재택근무를 권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공기의 질이 이전보다 깨끗해졌다. 지구가 우리 인간만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면 아마 다른 동물은 최근의 환경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퇴치되더라도 환경만큼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현재와 같은 수준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지구로 다시 돌아오더라고 그게 좋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목표만을 지향적인 우리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이곳 지구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본향으로 돌아가면 신께서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첫째, 스스로 삶을 기쁘게 살았는가. 둘째, 인생을 살며 남들을 기쁘게 했는가이다. 몇 자 안 되는 질문이지만 답하기는 쉽지가 않다. 만약 시험에 통과하면 그대로 남지만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모자라는 수업을 배우기 위해 지구별로 돌아올 수도 있다.

사람들은 시험에 합격하기를 원할까, 아니면 다시 지구별로 돌아오기를 원할까. 아무래도 시험이라면 다들 통과하기를 바랄 것 같다. 나도 역시 그렇다. 그러나 왠지 시험에 붙을 자신이 없다. 지난 생을 돌이켜보면 스스로 기쁘게 살지도 못했고 남을 기쁘게 한 적은 더더구나 없기 때문이다. 인생 2막은 바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남은 시간은 과외 수업을 해서라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할 일이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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