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천주교 신자에게 불상 조각 맡긴 법정 스님

중앙일보

입력 2020.10.09 09:00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70)

집안에서 천주교를 믿어 어렸을 적에 교회에 다녔다. 집에서 불교를 믿었다면 절에 다녔을 터이다. 나이 어린 자녀들은 스스로 종교를 선택하기 보다 부모의 권유에 따라 믿는 경우가 많다. [사진 pixnio]

집안에서 천주교를 믿어 어렸을 적에 교회에 다녔다. 집에서 불교를 믿었다면 절에 다녔을 터이다. 나이 어린 자녀들은 스스로 종교를 선택하기 보다 부모의 권유에 따라 믿는 경우가 많다. [사진 pixnio]

어렸을 적에 교회에 다녔다. 집안에서 천주교를 믿었기 때문이다. 아마 집에서 불교를 믿었다면 절에 다녔을 터이다. 마찬가지로 이슬람교 신자는 그의 부모가 이슬람교 신자일 가능성이 크다. 나이 어린 자녀들은 스스로 종교를 선택하기보다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믿는 경우가 십상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다 머리가 커지며 한동안 교회에 발을 끊었다.

교회를 다시 찾은 건 대학에 들어간 후였다. 당시에는 우리 사회에서 천주교의 역할이 컸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했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호스피스 시설을 도입하는 등 나라에서 하지 못한 일을 종교에서 시작했다. 자연히 신자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무언가 일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교회에서 설립한 사회복지시설의 장애인 봉사를 자원했다.

종교가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교세가 급격하게 커졌다. 신도시가 여기저기 건설되자 교회도 그만큼 늘어났다. 건축자금은 대부분 신자의 모금을 통해 조달했다. 교회에서는 모금을 독려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유인물에 개별 성금 액수를 게재하기도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도 있는데, 교회에서 이렇게 드러내는 게 좀 의아했다. 형편이 좋아 많이 낸 사람은 모르겠으나 성금을 적게 내거나 아예 내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서늘했을까. 신께서는 그 돈으로 교회를 크게 건축하기를 원할까, 아니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를 원할까 하는 생각이 났다.

어느 날 교회나 절을 습관적으로 다니지 말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꼭 나를 겨냥한 말처럼 생각되었다. 미사에 참여하여 사제의 강론을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성경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성경과 종교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재미있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했다. 방대한 성경을 읽고 나서 과연 하느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며칠 고심한 끝에 두 글자로 요약되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진작가 유섭 카쉬가 슈바이처 박사의 초상사진을 찍기 위해 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카쉬는 슈바이처 박사가 성서학자임을 알고 십계명 중에서 어느 계명이 제일 중요한가를 물었다. 슈바이처는 예수님이 한 계명만 말씀하셨다고 하며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라고 말했다. 슈바이처 박사가 나와 생각이 흡사한 것을 알고 기뻤다.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평생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 불경과 유학 책도 섭렵했다. 처음에는 성경의 내용과 서로 다르지 않을까 추측했는데 불경의 내용도 성경과 흡사했다. 사람의 생각은 동서가 다르지 않고 진리는 서로 같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종교만 옳다고 믿는 사람에게 타 종교의 책도 권하고 싶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를 수도 있고 능선을 따라 오를 수도 있다. 정상에 오르는 게 중요하지 길은 아무려면 어떠한가? 그러나 일부 성직자는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만 신자에게 강요하고 나아가 타 종교를 믿는 사람은 배타 시 한다. 하물며 동일 교단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성직자를 쫓아내는 종교단체도 있다.

오래전 김수환 추기경이 성균관에서 심산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독립지사이자 유교의 어른이다. 추기경은 관례에 따라 심산의 유택을 찾아 큰절을 올렸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떻게 추기경이 절을 다 하시냐”고. 추기경은 되레 의아해했다. “아니 어른께 인사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그분은 심산 연구회의 살림이 어려워지자 나중에 남몰래 작은 상자를 보냈다. 상금 700만 원에 300만 원이 보태져 있었다.

성북동 길상사에 가면 정원 한가운데에 관음상이 하나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예의 불상과 다르다. 오히려 성모 마리아상을 닮았다. 불상을 조각한 최종태 선생이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일까. 관음상을 점안하는 날 법정 스님은 관음보살과 성모마리아는 그 상징성이 같다는 얘기를 하셨다. 법정 스님은 왜 불교가 아닌 타 종교 신자에게 관음상 조각을 의뢰한 것일까?

우리 사회의 종교 지도자였던 어른들은 교리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길상사의 관음상을 세우며 최종태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땅에나 경계가 있지 하늘에 무슨 경계가 있겠는가?' [뉴스1]

우리 사회의 종교 지도자였던 어른들은 교리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길상사의 관음상을 세우며 최종태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땅에나 경계가 있지 하늘에 무슨 경계가 있겠는가?' [뉴스1]

우리 사회의 종교 지도자였던 어른은 교리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길상사의 관음상을 세우며 최종태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땅에나 경계가 있지 하늘에 무슨 경계가 있겠는가?” 아마 법정 스님도 이러한 최종태 선생의 정신세계에 공감해 그에게 관음상 조각을 의뢰했을 거 같다. 영성이 높은 분에게는 종교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의 역사를 공부하며 성직자가 우리 사회에서 저지른 잘못도 알게 되었다. 어느 종교를 봐도 그 내용을 요약하면 사랑으로 귀착된다. 그러나 과거 일부 성직자는 그러하지 못했다. 권력과 결탁해 다른 종교를 탄압하고 이웃 나라를 침략해 신의 뜻을 거역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와 이념의 차이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종교가 사회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구원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예수의 부활을 반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신부, 다른 하나는 목사다. 왜 이들은 부활을 반대할까? 남들에겐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부활하면 당연히 야단을 맞을 터이다. 물론 위의 얘기는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말 속에 뼈가 있다.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의 추기경과 신부를 질책한 적이 있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임종할 때 무신론자가 가장 편안히 죽는다는 주장도 있다. 신을 믿으면서도 신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아 오히려 심판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A.J.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를 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선교를 위해 중국에 파견나와 있던 독일계 수녀와 프랑스계 수녀의 이야기다. 세계 2차대전이 터지자 이들은 각각 하느님에게 자신의 나라가 승리하기를 기도한다. 같은 목적을 지닌 성직자가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웃을지 모르겠지만 요즘도 이와 흡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정치지도자가 소속 정당의 승리를 기원한다든가 권투선수가 경기에 앞서 신에게 기도하고 시합에 나서는 사례 등이다. 양쪽에서 모두 자신의 승리를 기도하면 과연 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그래서 어느 성직자는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신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으며 전지전능함을 믿는다면 기도한다는 게 사실 무의미하다. 그보다는 신의 뜻을 깨닫고 그분이 원하는 바를 실천할 일이다.

하루는 호스피스 센터에 근무하는 수녀를 만나 인터뷰하다가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성직자도 일반인과 같은 인간임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조금만 실수해도 성직자 운운하며 너무 엄격한 잣대로 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최근 중앙일보 보도를 보니 고백성사를 하러 교회에 찾아간 여성에게 성행위를 강요한 성직자가 있었다고 한다. 수녀의 말처럼 성직자도 그저 인간이었다.

어느 조직이든 올바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도 험지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느라 애를 쓰는 성직자가 훨씬 많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자를 선동하고 잘못 이끄는 성직자도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성직자의 말을 그대로 추종하기보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힘을 키워야겠다. 나아가 자기의 종교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타 종교를 이해하는 배려심도 가졌으면 한다. 땅에서나 경계가 있지 하늘에 무슨 경계가 있겠는가.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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