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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97년래 사형 집행 ‘0’…사형수에 속죄 기회 안 주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72)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최근 출판한 책에서 그의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교토대학을 다니다가 징집되어 중일전쟁에 투입되었는데, 포로로 잡은 중국 병사를 자신이 속한 부대에서 참수했다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사건을 왜 자식에게 털어놓았을까. 늦게라도 사실을 밝혀 다소나마 속죄를 받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얘기는 거기까지였다. 아버지는 자세한 얘기를 피했다.

여기 그 당시 일을 추측해볼 수 있는 유사한 사례가 있다. 하루키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군인으로 중국과의 전쟁에 참여했던 일본인의 고백이다. 그는 현재 말기 암 환자로 임종을 앞두고 있다. 어린 시절 천황의 통치 교육을 받은 그는 전쟁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천황이 호소하는 무사도 정신은 그의 피를 들끓게 했다. 그는 중국 쑤저우 지역에 배치받았는데 가는 곳마다 불을 질렀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죽였다. 아직 숨이 남아있던 포목점 주인과 길거리에서 수박을 파는 남자도 그 대상이었다. 신병이었던 그는 상관의 명령대로 움직였고 그 명령은 “죽여라, 죽여, 중국인을 보면 깡그리 죽여라”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28명의 중국인을 살해했다.

서구에서는 18세기 후반 일부 사상가가 사형 제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영국과 독일 같은 나라는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우리나라는 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아직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사진 pxhere]

서구에서는 18세기 후반 일부 사상가가 사형 제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영국과 독일 같은 나라는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우리나라는 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아직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사진 pxhere]

종전 후 그는 치과 대학에 진학해 치과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예전의 그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전쟁터에서 있던 일을 뉘우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그에게 살해당한 중국인이 죽기 전에 그를 보던 눈이 늘 떠올랐다.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면 좀 나을까 해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중국인의 혼령은 한 번도 그를 놓아준 적이 없다. 그는 죽으면 유골을 천안문에 뿌려 수천, 수만 명이 자신을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속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살인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평생 237명을 죽인 사람이 있다. 흉악무도한 살인범이 아니라 교도소에 근무하는 사형집행인이다. 그는 고교를 마치고 경찰학교에 입교하였는데, 졸업 후 뉴욕주연방법원의 간수로 발령을 받았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죽음을 집행했다.

그가 죽인 대부분 사형수는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강도짓을 하다가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었다. 그들은 죽기 전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했지만, 법은 그들에게 잘못을 고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사형집행인은 다시 삶을 산다면 절대로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사례에서 보듯 자의든 타의든 사람을 죽인 사람은 죽기 전까지 고통 속에서 지냈다. 불가에서 살생하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 생명을 지닌 동물을, 더구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누구나 행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과거에는 총살형을 집행할 때 차출된 사형집행인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들에게 건넨 총 중에는 실탄 대신 공포탄이 있는 총이 있다며 상대의 등을 떠민 사례도 있다. 계급사회에서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사형집행인은 그들이 지닌 총에 공포탄이 있기를 바라며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사형은 기원전 18세기 수메르 법전에도 있듯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법정최고형이다. 그러나 사형제는 다음과 같은 딜레마가 있다. 죄인이 범죄를 저지를 당시 죄질이 너무 무거워 당연히 사형감이라고 여기지만 막상 사형을 집행할 시기에는 그동안 참회하며 죄를 뉘우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이미 심리적으로는 죗값을 받았을 수도 있다.

사형수를 지금처럼 방치하는 것도 재고할 문제다. 차제에 과연 사형제도를 존속하는 것이 필요한가를 공론화하여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볼 때다. [사진 pxhere]

사형수를 지금처럼 방치하는 것도 재고할 문제다. 차제에 과연 사형제도를 존속하는 것이 필요한가를 공론화하여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볼 때다. [사진 pxhere]

서구에서는 18세기 후반 일부 사상가가 사형 제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영국과 독일 같은 나라는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우리나라는 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아직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지금도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전국에 60명 수감 중이다. 그러나 1997년 이후에는 사형을 집행한 적이 없다. 누구도 자신이 사형을 집행하는 당사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26년째 사형수로 복역 중인 사람이 있다. 이들은 늘 언젠가 사형이 집행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사형 집행을 막연히 미루고 그대로 방관하기보다 그들에게 속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는 없을까.

사형수가 저지른 범죄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책임도 있다. 우선은 제3의 살인자가 나오지 않도록 범죄를 미리 예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말을 가려서 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살인 사건의 많은 부분이 충동적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거나 우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형수를 지금처럼 방치하는 것도 재고할 문제다. 차제에 과연 사형제도를 존속하는 것이 필요한가를 공론화하여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볼 때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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