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빌어먹을 동네 구했다" 또 101명 승부수 띄운 트럼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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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존스타운의 공항 격납고 앞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존스타운의 공항 격납고 앞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교외 거주 여성 여러분, 나를 좀 좋아해 줄래요? 내가 여러분의 빌어먹을 동네를 구했습니다.”

[미 대선 D-20] #여론조사 6개 경합주서 바이든 모두 우세 #4년 전 클린턴도 앞서다 역전패 당해 #투표율·우편투표 처리에 승패 달려

1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존스타운의 공항 격납고 앞에 마련된 유세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도시 교외 거주 중산층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겨냥했다. ‘법과 질서’를 엄중하게 집행해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교외 지역의 안전을 지키겠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펜실베이니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이후 유세를 재개한 뒤 두 번째로 찾은 곳이다. 2016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0.7%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다. 지금은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여론조사에서 7.2%포인트 앞서있다.

대선을 20일 앞둔 14일 선거 분석 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잇이 집계한 여론조사 평균에 따르면 바이든은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한 주요 경합주 6곳 모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시간과 위스콘신에서도 각각 8.0%포인트, 7.9%포인트 앞섰다.

미 대선 D-20 6대 격전지 비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 대선 D-20 6대 격전지 비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플로리다(4.5%포인트), 노스캐롤라이나(3.3%포인트), 애리조나(3.9%포인트)에서도 트럼프를 따돌렸다. 전국 조사는 두 자릿수로 격차를 벌렸다. 지금까지 최대인 10.5%포인트 차이로 트럼프를 앞서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장밋빛 결과에도 바이든 캠프는 도통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4년 전 이맘때도 격전지 여론 조사치는 지금과 거의 유사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 후보를 큰 차이로 앞서다가 실제 선거에선 역전패당하며 정권을 빼앗긴 선례가 있다.

2016년 선거일 20일 전(10월 19일) 클린턴은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로 불리는 펜실베이니아ㆍ미시간ㆍ위스콘신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각각 7.5%포인트, 9.1%포인트, 8.4%포인트 앞섰다.

남부 선 벨트(Sun Belt) 3개 주인 플로리다ㆍ노스캐롤라이나ㆍ애리조나에서는 4.2%포인트, 3.2%포인트, 1.0%포인트 우세했다. 현재 바이든의 ‘성적표’와 판박이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의 뚜껑을 열자 트럼프가 6개 주를 모두 가져갔다. 러스트 벨트 3개 주는 1%포인트에 못 미치는 차이였고, 선 벨트 3개 주 역시 오차범위 이내였다. 트럼프가 5%포인트 미만으로 신승한 6개 주를 워싱턴포스트와 USA투데이 등 미 언론은 최대 격전지로 꼽는다.

이들 6개 주가 대선의 승패를 가를 것이란 건 4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여론조사와는 달리 또 신승을 거둘지, 아니면 표심이 조사결과대로 굳어질지에 미 대권의 향방이 갈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6개 주에 걸린 대통령 선거인단 수를 합하면 101명이다. 이번 대선이 '101명의 승부'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도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인 러스트 벨트가 다시 민주당 품으로 돌아올지, 한 번 더 트럼프를 밀지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4년 전 선거 결과는 트럼프의 숨은 표, 이른바 '샤이 트럼퍼' 가 만만치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번에도 이런 표들이 숨어 있을 것이란 예측 한편으로 4년 전과는 양상이 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태구 UC버클리 교수는 "지난 4년간 트럼프 대통령 스타일이 널리 알려지면서 ‘샤이 트럼퍼’에 의한 숨은 지지층 효과는 많이 사라졌고, 바이든은 비호감 최고수준이던 힐러리에 비해 반대하는 유권자가 훨씬 적다"고 설명했다.

2016년 정치판에 처음 등장한 ‘아웃사이더’ 트럼프와 2020년 현직 대통령 트럼프를 바라보는 유권자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도 "4년 전 유권자들이 클린턴을 엘리트·기득권 세력으로 보고 분풀이를 대신 해 줄 사람으로 트럼프를 선택했지만, 지금 바이든은 이웃집 아저씨의 이미지를 추구한다"면서 "분풀이 선거도 두 번 반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13일 플로리다주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13일 플로리다주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바이든은 유세 때마다 펜실베이니아주 소도시 스크랜턴의 블루칼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배경을 강조하며 "스크랜턴이냐, (트럼프가 거주하던 뉴욕) 파크애비뉴냐, 선택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러스트 벨트의 승부를 가를 최대 변수는 투표율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원래 청색 주(Blue State)였던 펜실베이니아ㆍ미시간ㆍ위스콘신을 지키면 바이든이 이길 수 있다"면서 “2016년 클린턴 지지자들이 당연히 이길 줄 알고 투표장에 안 나간 게 주요 패인이었으므로 이번 선거 결과는 투표율에 달렸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2016년 펜실베이니아에서 불과 4만4292표 차이로 졌다.

선 벨트 최대 격전지는 가장 많은 29명 선거인단이 배정된 플로리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 코로나19 감염 후 이곳에서 유세를 재개하자 곧바로 다음날 바이든 후보가 출격했다.

바이든은 은퇴한 고령 유권자들을 향해 "트럼프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성대한 행사를 열어 공화당원들은 서로 끌어안으며 바이러스를 퍼뜨리는데, 지난 7개월 동안 손주들을 안아보지 못한 사람이 여기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며 반트럼프 정서를 자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에 이어 오는 16일에도 플로리다 유세 일정을 잡았다. 플로리다를 사수하지 못하면 재선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주소를 플로리다로 옮기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경합주에 투입한다. 조만간 바이든 현장 유세에 직접 나서는 등 득표를 위한 총력전에 들어간다. 바이든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온라인 모금 활동, 투표 독려 등 측면 지원에 주력하던 오바마 전 대통령이 유세에 나서면 당내 규합과 흑인 투표율 제고에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과 다른 2020년 선거 또 다른 변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우편 투표 확대다. 소규모로 부재자 투표를 운영하던 것을 사전 준비 없이 전국으로 확대한 데 따른 큰 혼란이 예상된다.

기표한 용지가 제때 배송되지 않거나 분실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기표ㆍ서명 등 절차적 흠결로 무효 처리되는 표도 대량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우편 투표를, 공화당 지지자들은 현장 투표를 선호한다는 데 있다. 우편 투표로 행사한 표가 무효 처리될 경우, 트럼프에게 유리해진다.

플로리다주립대에 따르면 이날 현재 미 전역에서 우편투표를 신청한 유권자는 7618만명으로, 2018년 중간선거 유권자(1억5306만명)의 절반(49.8%)에 이른다. 민주당 지지자가 과반이 넘어(56.8%) 공화당 지지자(23.6%)나 무당파(18.9%)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교수는 "미 선관위에 따르면 2016년 유권자가 우편 투표를 신청했으나 다시 돌아오지 않은 표가 650만 표였다"면서 "우편 투표 처리 과정에 따라 이번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도 치러보지 못한 선거를 하는 것이어서 이전 선거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백희연·석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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