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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의사 때려칠 각오로 진료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42) 

119에서 환자 수용 문의가 왔다. 고열과 폐렴 증상의 80대 노인이었다. 때가 때인 만큼 코로나19가 걱정됐다. 하필 격리실은 먼저 온 환자들로 가득 차 있는 상태.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2시간 전에 했던 통화 내용이다.

하지만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아무 데도 없었다. 119는 노인을 데리고 2시간 넘게 도로를 헤맸다. 점점 새벽이 깊어졌고 환자는 약해졌다. 견디다 못한 구급대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병원으로 환자를 밀고 들어왔다. 무작정. 병원 문턱은 밟아봐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격리실이 없는데 발열과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데려오다니. 무책임한 태도에 몹시 화가 났다. 정식으로 항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환자를 마주한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는 패혈증 쇼크로 당장에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게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위중한 환자가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다니.

고열과 폐렴 증상의 80대 노인이 구급차에 실려 우리 병원으로 왔다. 격리실이 없는데 발열과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데려오니 처음엔 화부터 났다.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고열과 폐렴 증상의 80대 노인이 구급차에 실려 우리 병원으로 왔다. 격리실이 없는데 발열과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데려오니 처음엔 화부터 났다.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구급대원은 왜 이런 환자를 싣고 발만 구르고 있었던 걸까? 책임을 묻자면 환자를 받지 않은 모든 병원의 잘못이며, 나아가 시스템을 아직 구축하지 못한 나라의 잘못이며, 궁극적으로는 코로나19라는 몹쓸 전염병의 잘못이었다.

나는 환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한시도 더 지체할 수 없는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리실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느라 격리된 환자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낮은 환자를 일반 진료 구역으로 옮겼다. 그렇게 만든 빈자리에 노인 환자를 받았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격리실에서 꺼낸 환자에서 코로나19가 진단된다면? 지역 내 가장 큰 응급실이 폐쇄되는 수순을 밟게 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위험으로 내몰릴 터였다. 내가 그 상황을 감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주위에서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그때는 이 일을 때려치우자. 이 병원이 아니라 의사란 직업 자체를.

혹시나 모를 감염 전파 가능성 때문에 당장 숨넘어가는 환자를 거리로 내몰 수는 없으니까. 물론 그 길이 정답일 수도 있다. 재난 상황에는 다수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소수의 생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계산은 달랐다. 밖으로 꺼낸 환자는 코로나19 가능성이 작았다. 그 환자를 격리실에 두어서 얻는 이득은 결코 노인의 생명 값보다 크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자의적인 판단이다. 모두가 공감해줄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 실제로 문제가 생기면, 나는 아마 전 국민 앞에서 부관참시를 당할 것이었다.

응급 노인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격리를 해제하고 밖으로 꺼낸 환자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만약 양성이었다면 자의든 타의든 나는 의사직을 때려치웠을 것이다. [사진 pixabay]

응급 노인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격리를 해제하고 밖으로 꺼낸 환자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만약 양성이었다면 자의든 타의든 나는 의사직을 때려치웠을 것이다. [사진 pixabay]

환자의 상태는 병원에 들어온 뒤에도 점점 더 나빠졌다. 혈압은 계속해서 떨어졌고 몸의 산성화가 견디기 힘든 수준까지 악화됐다. 동맥혈 검사 수치에 매시간 나빠졌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들 바삐 뛰어다녔다. 위급한 환자를 눈앞에 두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게, 천상 응급의학과 의사들이었다. 다행히 서너 시간 정도 지나 환자는 안정을 되찾았다. 고비를 넘어선 것이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노인이 안정되자 미뤄둔 걱정이 밀려들었다. 격리를 해제하고 밖으로 꺼낸 환자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가능성이 작다고 해서 안심할 만큼의 배짱은 없었다. 내색은 못 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불안했다. 그렇다고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저 음성 결과가 나오기만 기도할 뿐. 동이 틀 무렵 마침내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행히 음성이었다. 만약 양성이었다면 자의든 타의든 나는 지금쯤 의사직을 때려치웠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장담컨대 환자가 병원에 들어오지 못하고 30분만 더 길에서 시간을 허비했다면 그는 십중팔구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코로나19를 막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외에도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은 많다. 나는 응급실에서 그런 환자를 매일같이 만나고 있다. 코로나19와 싸우면서도 동시에 다른 소중한 생명을 지킬 방안에 대한, 좀 더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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