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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환자구역 소독은 누가? 당신에게 닥친다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40)

코로나19가 기세를 떨치면서 24시간 의심 환자 진료시스템을 급히 마련해야 했다. 시설점검과 의료진 확보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음압격리실 진료부터 입·퇴원까지, 환자 처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갔다. 시작이 좋았다. 우려에 비해 부드러운 진행이었다.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음압 진료실이 두어 사이클 정도 순환하자 생각지 못한 문제가 튀어나왔다. 진료 보조 부서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다녀간 구역은 청소와 소독이 필요했는데, 그 업무를 누군가에게 부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도 그 공간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직원을 무작정 그 공간에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자니 대기 중인 다음 환자들이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다녀간 구역은 청소와 소독이 필요했는데, 그 업무를 누군가에게 부여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진 Pixabay]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다녀간 구역은 청소와 소독이 필요했는데, 그 업무를 누군가에게 부여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진 Pixabay]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있다.

그때 응급실 팀장은 미화부를 설득 중이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떨고 있었다. 나라 전체에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팀장은 보호장구를 올바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거듭 강조했지만, 그는 좀처럼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억지로 사지로 내몰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 한 몸 희생하라는 얘기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건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그는 땅에 고개를 처박은 채 연신 좌우로 내 저었다. 이미 여럿이 일에서 도망친 상태였다. 대안이 없었다. 당장 오늘 밤을 넘어서는 일이 막막했다. 팀장은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취했다. 먼저 의료진이 이미 그 공간에서 활동했음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걱정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수당을 계속해서 올리는 배팅을 시도했다. 병원 집행부에서 경제적인 자율권을 얻은 모양이었다. 마침내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까지 금액이 올라갔다. 그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룻밤 노동치고는 큰 금액이 눈앞에 놓였다. 그 돈이면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멋진 옷을 한 벌 더 사줄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든 부모님과 근사한 식사를 함께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동안 고생한 자신에 대한 포상으로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겠다. 그는 두려움을 꾹꾹 눌러 담은 채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보호장구를 챙겨입었다.

거칠게 표현하면 돈과 목숨을 저울질한 셈이지만, 천박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신념을 꺾으라는 미끼가 아니고, 위험을 무릅써 달라는 대가였으니까. 그건 정당한 그의 몫이었다. 충분히 저울질할 자격이 있었다. 누구나 꺼리는 장소에 들어갈 용기를 냈으니 말이다. 덕분에 밤새 많은 환자가 정상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여러 명의 생명을 구한 착한 저울질이었다.

급한 불이 꺼지고 하루 이틀이 지나자 비로소 인력 문제가 해결됐다. 새로 낸 공고를 보고 일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여럿 찾아왔다. 높은 일당을 보고 쫓아온 건지, 국가적인 재난을 이겨내는데 한몫하고 싶었던 건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하긴 전자면 어떻고 후자면 어떠한가? 어차피 굳은 결심을 한 사람들이니 그 결의를 높게 사지 못할 이유가 없고,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페이를 지불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었다. 앞으로의 길고 지루한 싸움에서 의료진이 먼저 나가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충분한 인적, 물적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사진 Pixabay]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었다. 앞으로의 길고 지루한 싸움에서 의료진이 먼저 나가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충분한 인적, 물적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사진 Pixabay]

비단 미화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병원에서는 수많은 의료진이 크고 작은 위험을 무릅쓰고, 공포를 이겨가며, 모두가 꺼리는 일을 묵묵히 수행했다. 의료인으로서 책임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열정이 언제까지나 지속될까?

평소보다 일이 갑절로 힘들어졌다. 감염이 옮지 않도록 극도의 긴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보호장구에 어깨가 짓눌리고 답답한 방역 마스크에 숨쉬기도 힘들다. 기존의 환자 업무는 전혀 줄지 않았는데 새로운 감염 업무는 날마다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들 눈에 띄게 지쳐가고 있다.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길고 지루한 싸움이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이 먼저 나가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길 바라본다. 충분한 인적, 물적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미화부 여사님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을 한낱 탐욕으로만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말이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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