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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바이러스 퍼뜨리려고 왔냐” 아시아인 기피로 번진 코로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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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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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국제사회에서 외국인 혐오와 아시아인 차별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캐나다 등에서 중국인은 물론 서구 사람들이 외모로 구분하기 어려운 한국인·일본인·필리핀인·태국인 등 아시아인 전체를 싸잡아 기피하거나 차별하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BBC방송, 프랑스 일간 르 몽드,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을 종합하면 아시아인들은 욕설·모욕·출입금지·불매·기피에 등교금지 서명 등 다양한 형태로 차별을 겪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화와 다문화적 확산으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언어 등에서 차별·편견을 없애자는 주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이 전염병 확산을 틈타 표면으로 떠오른 셈이다.

학교서 기침했다 봉변 당하기도 #차별당한 한국 교민 제보 줄이어 #중국 우방 국가도 ‘검역주권’ 외쳐 #러시아·파키스탄·싱가포르 빗장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최근 ‘“바이러스 주의해, 지저분한 중국인”-코로나바이러스 퍼지며 아시아인 대상 인종차별 번져’라는 기사에서 전염병이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차별로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계 프랑스인 ‘민’은 거리를 지나다 제목에 등장한 모욕적인 말과 함께 “너는 프랑스에서 환영하지 않는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프랑스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손흥민(오른쪽)을 제외한 토트넘 선수들의 얼굴에 마스크를 합성한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유럽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아시아 문화에 대한 기피가 확산 중이다. [트위터 캡처]

손흥민(오른쪽)을 제외한 토트넘 선수들의 얼굴에 마스크를 합성한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유럽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아시아 문화에 대한 기피가 확산 중이다. [트위터 캡처]

파리 교외 퐁트네수부아의 수퍼마켓에서 아들을 대리고 장을 보던 필리핀계 엄마는 한 젊은이로부터 대놓고 “바이러스 조심해, 중국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리용의 치즈 가게를 찾았던 엘로디는 “아시아인을 상대로는 영업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일본인 유학생 쥘리는 학교에서 기침했다가 주변으로부터 “너는 모두를 감염시키려 한다”는 핀잔을 들었다. 르 몽드는 한국인·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이 국적과 관계없이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페이스북 등에서는 차별을 당한 한국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민자 천국’으로 통하는 캐나다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주 ‘캐나다의 중국인 공동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종차별적 매도당해’라는 제목의 토론토발 기사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중국인을 모욕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스타그램에선 토론토에 개업한 중국 식당 소개 글이 오르자 인종차별적 댓글이 줄을 이었다. 토론토 북부 요크 학군의 학부모들은 중국을 여행했던 학생은 17일간 등교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인터넷 청원을 시작해 9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한 청원 서명자는 “야생동물을 먹고 주변을 감염시키는 일을 중단하라”며 “너 자신을 스스로 검역하든지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댓글을 달았다. 중국계 캐나다인 테리 추는 가디언지에 “이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캐나다 주민과 관광객이 중국인 운영 가게를 기피해 중국인 공동체는 10억 캐나다 달러(약 9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중국이 바이러스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글로벌 사회는 바이러스와 차별 확산을 동시에 막아야 할 처지가 됐다.

한 중국인이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메시지와 이를 프랑스어로 적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트위터 캡처]

한 중국인이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메시지와 이를 프랑스어로 적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트위터 캡처]

이런 상황에서 세계 각국이 검역을 이유로 빗장을 걸면서 중국의 국제적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 4일까지 확진 환자가 나온 27개국의 2배가 넘는 60개국 이상에서 후베이(湖北)성 또는 중국 방문자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중국행 항공기 운항을 중지했다. BBC방송에 따르면 미국·싱가포르·호주·뉴질랜드·이탈리아·이라크·과테말라는 중국 전역에서 오는 방문객의 입국금지라는 초강경 조처를 했다. 후베이성을 방문한 외국인의 입국만 막는 한국보다 대상이 넓다. 반미시위가 끊이지 않는 이라크도 이런 조처를 했다. 중국과 접경한 러시아·몽골·베트남·네팔은 국경을 폐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31일 “정보 공유에 악영향을 미치고 경제에도 부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이동을 막는 데 반대했지만, 각국은 중국과의 관계나 교류 수준과 무관하게 스스로 판단해 국민 보호를 위한 ‘검역 주권’을 발효하고 있다.

신종코로나 여파로 텅빈 파리의 베트남 식당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종코로나 여파로 텅빈 파리의 베트남 식당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눈에 띄는 점은 중국의 대표적 우방인 러시아와 파키스탄이 초강력 차단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두 나라는 정치·군사적으로 가깝고 무기도 상당량 거래하지만 전염병 앞에선 누구보다 먼저 문을 닫았다. 파키스탄은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인프라 사업으로 중국에 400억 달러가 넘는 빚을 졌지만 임란 칸 총리는 국민 보호를 위한 초강력 조처 발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는 지난 3일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확진 판정을 받은 외국인은 추방하거나 격리 수용하는 등 특별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에선 중국인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자 추방을 언급한 건 러시아가 처음이다.

범중화권도 중국에 문을 걸어 잠그기는 마찬가지다. 싱가포르가 중국 방문자의 입국을 금지한 데 이어 대만은 중국 국적자의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후베이성에서 오는 모든 여행자를 차단했다. 중국은 일국양제에 반대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취임한 2016년 단체관광객의 대만 송출, 지난해에는 개인 관광을 각각 금지했다. 그럼에도 경제 분야 교류는 활발했는데 이번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오히려 대만이 빗장을 거는 상황에 이르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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