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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받은 오스카 각본상에는 블랙리스트와의 투쟁사가 담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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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지난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첫 순서로 받은 상은 각본상이었다. 오스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아카데미상은 1929년 5월 미국 영화의 발전을 목적으로 출연진과 제작진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봉 감독이 한진원씨와 함께 받은 오스카 각본상은 1940년에 신설됐다. 원년부터 있던 원작상은 1956년을 마지막으로 각본상과 통합됐다. 성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원작상은 봉 감독이 받은 각본상의 원류인 셈이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봉 감독,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포함 #정부 무능 묘사, 저항 부추긴 황당 혐의 #47년 미국 적색공포 영화인 탄압 연상 #사상검증 증언 거부 10명 블랙리스트 #‘로마의 휴일’ 오스카 원작상 트럼보 #타인 명의로 발표해 생전에 수상 못해 #커크 더글러스, ‘스파르타쿠스’ 각본 의뢰 #영화인 나서서 블랙리스트 분쇄한 쾌거 #권력은 비판에 귀 막고 아부 선호 속성 #권력 끝없이 감시 ‘야만의 시대’ 막아야

오드리 햅번이 영화 '로마의 휴일'에 출연해 로마 '스페인 계단'에서 그레고리 펙과 함께 젤라토를 먹는 장면. 이 영화의 시니리오를 쓴 달턴 트럼보는 미국 영화인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공식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 이름을 내세워야 했다. 이 때문에 오스카상 원작상을 받았지만 트럼보는 시상식장에 나갈 수 없었다. [중앙포토]

오드리 햅번이 영화 '로마의 휴일'에 출연해 로마 '스페인 계단'에서 그레고리 펙과 함께 젤라토를 먹는 장면. 이 영화의 시니리오를 쓴 달턴 트럼보는 미국 영화인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공식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 이름을 내세워야 했다. 이 때문에 오스카상 원작상을 받았지만 트럼보는 시상식장에 나갈 수 없었다. [중앙포토]

1947년 ‘할리우드 10’ 미국 영화인 블랙리스트

오스카 원작상·각본상에는 미국의 어두운 역사와 영화인들의 창작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바로 ‘블랙리스트’의 핏줄기다. 미국의 블랙리스트는 1947년 미국 하원이 공산국가인 소련의 스파이와 의심자를 색출하기 위해 만든 비미국(非美國) 활동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HUAC)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이 위원회는 할리우드 영화인들을 대거 증인으로 소환했다. 냉전이 시작되고 소련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공산주의가 세계를 지배할지 모른다는 망상이 부른 ‘적색 공포(Red Scare)’의 일부였다.

1947년 미국 하원의 비미위원회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왼쪽). 증인 출석요구를 받자 '양심의 자유'를 내세워 출석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고초를 겪었다. [위키피디아]

1947년 미국 하원의 비미위원회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왼쪽). 증인 출석요구를 받자 '양심의 자유'를 내세워 출석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고초를 겪었다. [위키피디아]

하지만 소환된 100여 명의 영화인 중 10명은 양심의 자유를 지키겠다며 출석을 거부했다. ‘할리우드 10’으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감독인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나리오 작가였으며 일부는 제작자나 감독을 겸하기도 했다. 이들은 의회모독죄로 기소됐다. 민간조직인 영화제작자협회(MPAA)에 소속한 회원사 사장들은 이들을 해고하거나 앞으로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눈치를 본 것이다. 할리우드 10은 이렇게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고통을 받았다. 미국이 공산주의에 대응한다며 그들 못지않은 인권유린을 한 셈이다. 역사에 굵직하게 기록된 미국의 수치다.

오스카상 트로피. [워키피디아]

오스카상 트로피. [워키피디아]

트럼보 가명발표 ‘로마의 휴일’ 등 2편 오스카각본상  

할리우드 10 중에서 대표적인 피해자는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1905~76년)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뒤에도 몰래 작품 활동을 했다. 거장 윌리엄 와일러(1902~1982년) 감독이 연출해 영화사에 길이 남는 걸작이 된 ‘로마의 휴일(1953년)’의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다른 사람 명의를 내걸어야 했다. 어빙 레퍼(1898~1999년) 감독이 연출한 ‘브레이브 원(1956년)’이라는 작품은 아예 가공의 인물 명의로 썼다. 이 두 작품은 오스카 원작상을 수상했지만 트럼보는 상을 받을 수 없었다. 상은 이름을 빌려준 인물이나 가공의 인물 명의로 수여됐다.
로마에서 우연히 만난 공주(오드리 햅번·1929~1993년)와 미국 기자(그레고리 펙·1916~2003년)의 은밀한 로맨스를 다뤄 지금도 많은 영화팬들이 기억하는 ‘로마의 휴일’에는 이런 아픔이 숨어있다. 오드리 햅번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영화는 원작상과 함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의상상까지 받아 오스카상 3관왕이 됐다.
트럼보의 경우는 정치 때문에 예술가의 재능이 사장된 대표된 경우다. 그를 괴롭힌 블랙리스트가 마침내 사라진 것은 미국의 정치적 변화도, 권력자의 시혜도 아닌 영화인들이 과감하게 나선 덕분이었다.

'스파르타쿠스'로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커크 더글러스의 이름을 새긴 할리우드 동판. [위키피디아]

'스파르타쿠스'로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커크 더글러스의 이름을 새긴 할리우드 동판. [위키피디아]

커크 더글러스, ‘스파르타쿠스’ 트럼보에 의뢰  

블랙리스트를 분쇄하고 트럼보라는 이름을 할리우드에 공식 복귀시킨 중심 인물은 지난 5일 만 103세로 별세한 할리우드 배우 커크 더글러스(1916~2020년)다. 당대 최고 인기배우로 영화 제작에서도 발언권이 강했던 커크 더글러스는 1960년 스탠리 큐브릭(1928~1999년)이 연출하는 역사 영화 ‘스파르타쿠스’를 출연하면서 트럼보를 시나리오 작가로 강력 추천했다. 결국 그의 의사대로 트럼보가 이 작품을 맡았고 영화 크레딧에도 이름을 올렸다. 트럼보라는 이름이 음지에서 다시 양지로 나오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와 큐브릭 감독이 과감하게 트럼보를 기용하면서 권력에 의한 영화인 블랙리스트가 영화인의 손으로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1960년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포스터. 트럼보는 이 작품을 실명으로 쓰면서 블랙리스트의 터널에서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긴 고통이었다. [위키피디아]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1960년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포스터. 트럼보는 이 작품을 실명으로 쓰면서 블랙리스트의 터널에서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긴 고통이었다. [위키피디아]

영화의 내용도 트럼보가 굴레에서 벗어난 사건과 일맥상통한다. 고대 로마 시대에 자유를 그리며 억압에 맞섰던 노예 스파르타쿠스의 봉기를 다뤘다. ‘스파르타쿠스’는 커크 더글러스가 남긴 최고의 작품으로도 평가 받는다. 예술의 자유를 추구한 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의 노력이 만든 걸작이 아닐까 싶다. 트럼보는 같은 해 오토 프레밍거(1905~1986년) 감독이 연출한 ‘영광의 탈출(Exodus)’의 시나리오도 실명으로 발표했다. 블랙리스트는 두 방의 연타를 맞고 링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2011년 미국 작가조합은 이전에 타인이나 가공의 이름으로 기록됐던 그의 모든 작품 명의를 트럼보로 고쳤다. 역화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명예회복이다. 트럼보의 삶은 제이 로치(63) 감독이 2015년 연출한 극영화 ‘트럼보’ 제작으로 이어졌다. 토론토 영화제는 이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하면서 트럼보를 기렸다. 일부 고증 문제만 빼면 작품성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영화 '트럼보'에서 배우 딘 오고만이 연기한 커크 더글러스(오른쪽). 영화엔 제작자이자 배우인 그가 반공산주의 광풍이 불었던 시절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가 달튼 트럼보를 새 영화에 기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트럼보'에서 배우 딘 오고만이 연기한 커크 더글러스(오른쪽). 영화엔 제작자이자 배우인 그가 반공산주의 광풍이 불었던 시절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가 달튼 트럼보를 새 영화에 기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미국 ‘적색공포’가 문화예술계 뒤흔들어

미국의 블랙리스트 사건은 ‘적색 공포’에 휩싸였던 정치권력이 예술가의 밥줄을 끊으려고 시도한 어두운 역사다. 미국에선 제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한 뒤인 1917~1919년 노동조합·이민자에 대한 탄압과 배척 운동이 휩쓸었는데 이를 제1차 적색공포로(Red Scare)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7~1954년 공산주의자 의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청문회 소환, 기소, 탄압을 2차 적색공포로 부른다.
적색 공포라고 하면 흔히 매커시즘을 떠올린다. 1950년 미국 위스콘신 주 출신 연방상원의원인 조지프 매카시(1908~1957년)가 “미국 각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그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했던 ‘매카시 광풍’을 생각한다. 공산주의자로 의심 받은 수많은 사람이 청문회에 불려나가 수모를 당하거나 공직에서 물러났으며 수사와 재판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1만2000명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2700명이 해고됐다.

1950년 촬영된 돌턴 트럼보의 머그 샷. 적색공포 시대에 권력의 눈밖에 나면서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고초를 겪던 시절이다. [위키피디아]

1950년 촬영된 돌턴 트럼보의 머그 샷. 적색공포 시대에 권력의 눈밖에 나면서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고초를 겪던 시절이다. [위키피디아]

적색공포 악용한 매커시즘 비웃음거리 전락

하지만 1954년 36일간의 청문회 생중계 결과 미국인들은 오히려 매카시즘의 허상을 알게 됐다. 그 결과 그해 12월 미 상원이 매카시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매카시 광풍은 힘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냉전체제의 주역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1890~1969년, 재임 1953~1961년) 당시 대통령까지 공산주의자로 의심하면서 매커시즘은 자기 발을 찍고 말았다.
그 뒤 매카시즘이라는 용어는 정치적 선동, 근거 없는 모함, 모략, 흑색선전, 낙인찍기, 누명 씌우기, 무모함, 정치적 반대자 몰아세우기, 허위사실 유포로 대중의 관심 모으기 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국민의 두려움이나 사상·이데올로기를 둘러싼 갈등을 정치에 이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트럼보는 미국 상원 중심으로 이뤄진 매카시 광풍이 불기 전인 1947년 미국 하원의 비미국(非美國)활동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HUAC)가 할리우드 영화인들을 대거 증인으로 소환한 사건의 희생자다. 당시 냉전이 시작되고 소련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공산주의가 세계를 지배할지 모른다는 망상이 부른 제2차 적색 공포는 이렇게 문화예술인에 대한 억압으로 시작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각본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각본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AP=연합뉴스]

한국의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봉준호

트럼보가 미국의 블랙리스트 영화인이라면 봉준호 감독은 한국의 블랙리스트 영화인이다. 봉 감독은 2017년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가 공개한 MB 정부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봉 감독은 강성 69명 중 1인으로 분류됐다. 권력이 예술가의 뇌까지 지배하려고 한 증거다.
황당한 것은 봉 감독이 연출한 작품에 대한 평가다. ‘괴물’은 반미 및 정부무능을 부각하는 영화로, ‘살인의 추억’은 공무원·경찰을 부패무능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한 작품으로 각각 평가했다. 할리우드와 합작으로 만든 ‘설국열차’는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운동을 부추긴다고 평가했다니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다. 색안경 낀 권력이 문화예술에 얼마나 무지몽매하며, 정치도구로만 여기는지, 시대착오적인 시각으로 문화예술을 정치적으로만 평가하려고 드는지 극명히 보여준 사례이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참이나 뒤로 돌리려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지난 정권도 청와대·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한 혐의를 받았다.

더글러스 3대가 함께 출연한 영화 '더글라스 패밀리'. 가운데가 커크 더글러스, 그 왼쪽 위가 아들 마이클, 맨 왼쪽 아래가 손자 캐머런이다. 커크 더글러스는 훌륭한 연기자로서의 족적과 함께 트럼보를 기용해 블랙리스트를 부순 '표현의 자유' 투사로도 이름을 남겼다. [웹캡처]

더글러스 3대가 함께 출연한 영화 '더글라스 패밀리'. 가운데가 커크 더글러스, 그 왼쪽 위가 아들 마이클, 맨 왼쪽 아래가 손자 캐머런이다. 커크 더글러스는 훌륭한 연기자로서의 족적과 함께 트럼보를 기용해 블랙리스트를 부순 '표현의 자유' 투사로도 이름을 남겼다. [웹캡처]

권력 감시해 제2의 블랙리스트 작성 막아야

블랙리스트 작성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들의 밥줄을 끊어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며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잠재우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시대정신의 거울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을 권력자를 칭송하는 도구로 쓰려는 흉계다.
이런 블랙리스트가 계속 유지됐다면 문화예술에서 창의성이 제대로 자랄 수 있었을까.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체제에서 창의성이 꽃필 수 있을까. 하나의 목소리만 살아남는 곳에서 어떤 창작이 이뤄질 수 있을까.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는 싫은 소리보다 달콤한 찬사만 듣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다. 그들에겐 문화예술이나 창의성, 시대정신보다 자신들이 쥔 권력이 더욱 소중한 법이니까 말이다. 블랙리스트가 언제 어디서나 음으로 양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 이유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세력은 언론에도 재갈을 물리고 싶어 하게 마련이다. 문화예술과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은 문화예술과 언론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용비어천가’만 남기면 태평성대가 될 것이라는 망상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 시대착오적 ‘야만의 시대’가 다시 열리는 것을 막으려면 국민과 언론이 권력과 정치를 부단히 감시할 수밖에 없다.

채인택 국제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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