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푸틴 ‘5G동맹’…트럼프 보란듯 뭉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시진핑(左), 푸틴(右)

시진핑(左), 푸틴(右)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한 대미 항전에 나섰다. 미국이 사용 금지를 주장하는 중국 화웨이의 차세대 통신장비(5G) 네트워크를 러시아가 전면 도입하기로 계약하면서다. 중·러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대미 공동전선을 구축하면서 미·중 대립에 러시아까지 가세하게 됐다.

러시아, 화웨이 장비 도입 계약 #“중·러관계 역대 가장 높은 수준” #트럼프 “중국산 추가 관세” 압박 #중·러 정상 5G 협약식 참석 날 #미국, 유럽서 “화웨이 퇴출하자”

러시아 최대 이동통신회사인 모바일텔레시스템스(MTS)는 5일(현지시간) 중국 화웨이와 5G 이동통신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오는 2020년까지 러시아 내 5G 통신 서비스를 출범시키는 게 목표다. MTS는 공식 자료를 통해 “기존 인프라에 (화웨이의) 5G 및 사물인터넷(IoT) 기술 및 솔루션을 도입해 현 LTE 네트워크를 5G 준비 수준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협약서에는 이동통신 외에도 스마트시티·무인자동차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5G 활용 기술을 협력 개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양국 최대 IT회사가 참여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기술 협약식에는 방러 중인 시진핑(習近平·왼쪽 얼굴)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했다. 두 정상이 이날 크렘린궁에서 단독회담을 갖고 양국 간 기술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직후 협약식이 열렸다. 기업 간 협력을 넘어 정부 간 협력 전선을 구축하는 자리였다.

관련기사

궈핑 화웨이 순회회장은 “러시아가 화웨이의 장비를 쓴 것은 화웨이의 경쟁력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이 기념식에 러시아 대통령과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기술 제휴가 러시아와 중국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입증한다”고 말했다. 알렉세이 코르냐 MTS 총재도 “두 기업의 전략적 협력은 러시아와 중국의 무역 및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화웨이 5G 장비 도입 협약식은 이번 중·러 정상회담의 의미와 성과를 대내외에 상징적으로 보여준 자리다. 반(反)화웨이 전선을 구축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국을 향해 ‘5G 동맹’을 방불케 하는 중·러의 연대를 과시했다.

두 정상은 약 3시간에 걸친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를 ‘신시대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 2건을 발표했다.

중국 “미국이 디지털 철의 장막” 화웨이 포위망 돌파 나섰다

러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러시아산 중국 차 하발 F7 SUV 차량에 사인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날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갖고 통상·경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러시아산 중국 차 하발 F7 SUV 차량에 사인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날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갖고 통상·경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EPA=연합뉴스]

지구촌 수퍼파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항해 경제·산업·투자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취지가 깔려 있다.

두 정상은 양국 정부와 기업이 참여하는 10억 달러(약 1조1700억원) 규모의 ‘중·러 과학기술혁신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위안화와 루블화 간 통화 결제 확대도 약속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두 정상은 에너지·과학기술·우주항공 분야에서의 기술협력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러 공동전선’의 배경이 트럼프 대통령임을 숨기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날로 압박이 커지는 국제 정세에 대해 우리가 세부적으로 논의한 결과 국제 핵심 사안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입장이 비슷하거나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도 “중·러 관계는 국제정세와 내부 변화로 인한 시련을 견뎌냈다”며 “우리는 점진적 행보를 통해 양국 관계를 사상 가장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중국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대미 비판 보도를 쏟아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중·러 관계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으로 격상된 것은 대(大) 사건”이라며 “이는 중국과 미국,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어떻든지 영향을 받지 않고 중·러 관계가 계속해서 밀접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는 “미국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과학기술 냉전을 시작하고 디지털 철의 장막을 치고 있어 이는 자기 모순이며 표리부동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인민일보의 표현대로 과거 2차대전 종전 후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을 가르는 철의 장막이 만들어지며 이념의 냉전이 벌어졌다면, 이젠 디지털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 속에 ‘철의 장막’이 깔리며 ‘과학기술 신냉전’의 시대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과거 한국은 미·소 냉전 때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 선택을 고심할 이유가 없었지만, 과학기술 신냉전의 시대에선 선택 자체가 쉽지 않다는 우려가 계속된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2017년 양국이 함께 제시한 한반도 공동 로드맵(단계적·동시적 해결 구상)을 계속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비핵화 과정에 대북제재 해제를 포함하는 방안으로, 비핵화에 앞선 제재 해제는 없다는 미국 측 구상과는 상반된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난달 초 워싱턴에서 협상이 결렬된 이후 빠르게 격화하고 있다. 그 때문에 시 주석이 방러를 발표했을 때부터 이번 회담은 대미 우군을 확보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중·러는 5G 밀월을 과시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에서 동맹국·우방국을 향해 화웨이 퇴출 전선에 동참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5G 협약식이 열렸던 당일 피트 훅스트라 네덜란드 주재 미국대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나쁜 생각일뿐더러 잘못된 방향”이라며 “중국 정부가 화웨이 시스템을 통하는 정보를 가져간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듭 대중 추가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6일 아일랜드 섀넌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소 3000억 달러어치(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또다시 (관세를) 올릴 수 있다”며 “적절한 시기에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aero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