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 국내 이통사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5일 국내 기업인들을 앞에 두고 “5G(세대) 통신 장비는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이동통신업계는 6일 “해리스 대사의 언급은 사실상 화웨이의 통신 장비를 쓰지 말라는 압박”이라고 풀이했다. 여기에 중국 시진핑 주석의 6월 방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화웨이를 둘러싸고 국내 이통사에 대한 미·중 양측의 압박 수위는 갈수록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통사 중 특히 LTE 때부터 화웨이 장비를 사용해 온 LG유플러스가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다른 통신사의 5G 장비를 사용하면 기존 화웨이 LTE 장비와 충돌할 수 있다”며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미국 내 사업을 위해 LTE 때 깔았던 화웨이 장비를 포기했지만 우리로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이에 따라 화웨이와 기존에 체결된 공급 계약은 예정대로 진행하되 추가적인 계약은 당분간 미뤄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LG유플러스가 LTE 때 싸고 성능이 좋은 화웨이 장비를 구축하면서 2위 사업자인 KT를 바짝 추격했다”며 “5G에서도 화웨이 장비를 조기에 구축함으로써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던 전략이 타격을 입게 됐다”고 분석했다.
LG유플러스 이외의 이통사라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이통 3사는 최근 통신 재난 사태에 대비해 유선망 이원화에 나서면서 화웨이 부품은 주문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이통사 고위 관계자는 “‘화웨이 제품을 깐다, 안 깐다’ ‘이유가 화웨이 때문이다, 아니다’고 언급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통사 고위 관계자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굳이 화웨이 부품을 써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말자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통업계에서는 또 ‘왜 하필 통신이냐’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한국의 화웨이 통신 장비 수입은 유무선을 모두 합쳐도 연 5000억원 미만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 규모로 보면 크지도 않은데 미·중 무역분쟁의 타깃이 화웨이로 집중되면서 통신 사업자만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