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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서민·지역경제 최악인데…” 의정비 인상에만 눈먼 지방의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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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출마자들이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하며 큰 절을 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중앙포토

6.13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출마자들이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하며 큰 절을 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중앙포토

법 개정되자마자…“의정비 올리자” 봇물

“지방의회가 경기 불황과 최악의 실업률은 외면한 채 의정비 인상에만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지난 26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 바른미래당 울산시당 관계자들이 “조선업 불황과 자동차산업 침체 속에서 시의원들은 의정비만 올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울산시의회가 내년 의정비 중 월정수당을 2.6%(211만원, 연 총액 기준) 인상하기로 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정의당 울산시당 역시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의정비 인상안 철회’를 촉구한 뒤 울산시청 앞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전국 광역·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눈총’ #‘지방자치법’ 개정되자 월정수당 올리기 #시민들 “선거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의정비 현실화" VS “제 밥그릇 챙기기”

최근 ‘지방자치법 시행령’이 개정된 후 전국 광역·기초의회들이 앞다퉈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민경제와 국내 경기가 크게 위축된 상황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이익만 챙긴다는 비난도 나온다. 각 지방의회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의정활동비’ 대신 ‘월정수당’을 올리는 방식으로 의정비를 올리려 하고 있다. 월정수당은 지난달 23일 개정된 지방자치법 시행령에 따라 지방의회별로 자율적인 인상이 가능해져서다.

광주광역시의회는 지난 15일 시의원들의 월정수당을 올해보다 2.6%(98만원, 연 총액 기준) 인상하기로 했다. 내년 공무원 보수 인상률(2.6%)을 반영해 기존 3776만원이던 의정비를 3874만원으로 올린 것이다. 인상된 월정수당에 의정비 1800만원을 포함하면 내년도 광주시의원 의정비는 1인당 5674만원이 된다.

의정비 일러스트. 중앙포토

의정비 일러스트. 중앙포토

의정활동비는 ‘전국 동일’…“월정수당 올리자”

월정수당은 지방의원의 직무 활동에 대해 지급하는 월급 개념의 수당이다. 지방의원들은 여기에 의정활동에 필요한 자료수집이나 연구비 명목으로 지원되는 ‘의정활동비’를 합쳐 지급받는다.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의정활동비는 광역의원 1800만원 (연 총액), 기초의원 1320만원이다.

전남도의회는 이를 감안해 내년 월정수당을 17~18%까지 인상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2013년부터 동결됐던 월정수당을 전국 평균수준까지 올려야 한다는 명분에서다. 현재 3280만원인 월정수당을 18%가량 올릴 경우 의정활동비를 포함한 총 지급액은 5800만원이 된다.

세종시의회는 의정비 두 자릿수 인상을 추진 중이다. 2014년부터 월정수당을 동결함에 따라 전국 17개 광역의회 중 의정비가 가장 낮아졌다는 게 시의원들의 주장이다. 세종시의원들은 2015년부터 올해까지 월정수당 2400만원에 의정활동비 1800만원을 합쳐 4800만원을 받아왔다. 한 세종시의원은 “전국 광역의회 평균 의정비(5672만원)보다 1472만원이나 적어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광역의원 지방분권 촉구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지난달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광역의원 지방분권 촉구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광주·세종·대구 등 광역의회 인상 ‘분주’ 

대구·경북에서도 공무원 보수 인상률(2.6%)만큼 의정비를 올리는 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대구시의원들의 의정비는 연간 5760만원이다. 월정수당 3960만원에 의정활동비 1800만원을 합치면 전국 광역의회 평균(5672만원)보다 높다. 경북도의회는 대구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5359만원을 받고 있다.

울산시의회는 2021년과 2022년 월정수당을 2.6%씩 인상하기로 했다가 28일 철회했다. 당초 2019년과 2020년 의정비도 올릴 방침이었으나 비난 여론을 의식해 향후 4년간 동결키로 했다. 현재 울산시의원의 1인당 의정비는 월정수당 4014만원에 의정활동비 1800만원을 포함한 5814만원이다. 전국 17개 광역의회 가운데 서울·경기·인천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경기도의회도 공무원 보수 인상률(2.6%)에 맞춰 월정수당을 2.6%(117만원)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상안이 통과되면 경기도의원의 의정비는 현재 6321만원에서 6358만원으로 오르게 된다.

전국 기초의회에서도 의정비 인상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일부 지방의회에서는 여론조사까지 불사하며 월정수당을 20% 이상 올리려는 곳도 있다. 의정비를 공무원 급여 인상률보다 크게 많이 올리려면 여론조사와 의견수렴을 해야 한다. 전남 나주시의회는 월정수당을 2004만원에서 2505만원으로 25%(501만원) 올리기로 했다. 인상안이 확정되면 나주시의원들은 전국이 동일한 의정활동비 1320만원을 포함해 3825만원을 받게 된다. 전남 광양시의회도 내년 월정수당을 9.5%(223만원) 올려 총 의정비를 3895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강석구 바른미래당 울산시당위원장 직무대행(가운데)이 지난 26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의 의정비 인상 추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강석구 바른미래당 울산시당위원장 직무대행(가운데)이 지난 26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의 의정비 인상 추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기초의회도 인상 줄이어…시민들 “한심한 의회”

충북에서는 기초의회 11곳이 함께 의정비를 인상하려다 비난 여론에 부딪혔다. 충북 시·군의장단협의회가 지난달 29일 내년 총 의정비를 ‘5급(사무관) 20호봉’ 수준인 5076만원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가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올해 평균 3444만원인 의정비를 이들의 협의대로 올릴 경우 평균 인상률은  47.4%(1632만원)에 달한다.

인천 지역의 경우 연수·남동·부평·미추홀구의회와 옹진군의회 등 기초의회들이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다 비난여론에 휩싸였다. 당초 인천시 군·구의장단협의회는 현재 2400만~2600만원 수준인 월정수당을 19% 올리는 데 협의했으나 인천평화복지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반발로 인상 폭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이나 전문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월정수당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법 개정이 되자마자 의정비 인상에 목을 매는 모양새로 비치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경기침체로 서민들의 삶이 벼랑에 끝에 몰렸는데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선영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의정활동을 보여주지 않은 채 의정비만 올리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심한 의회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세종·울산·인천·청주·대구=최경호·신진호·최은경·최모란·최종권·김정석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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