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변하지 않은 북한, ‘문제 없다’는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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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지가 전격 공개됐다. 북한이 미국에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장을 해체하고 더는 발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한국과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기지는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개한 ‘신고되지 않았던 북한: 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NYT는 “북한이 큰 기만(great deception)을 쓰고 있다”며 “북한은 주요 (미사일) 발사장의 해체를 제시했지만 재래식 및 핵탄두 발사를 강화할 수 있는 다른 기지 10여 곳에 대한 개선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SIS, 북 삭간몰 미사일 기지 공개 #NYT “북한이 기만하고 있다” 지적 #볼턴 “북한과 2차 정상회담 준비돼”

CSIS는 민간 위성을 통해 분석한 공개되지 않은 북한 미사일 기지는 20곳으로, 이 가운데 최소한 13곳을 확인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ICBM 개발과 관련된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과 발사대 폐기를 공언했지만 중·단거리 미사일 발사 시설은 건재해 북한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유사시 북한은 스커드와 노동 등 중·단거리 미사일로 한·미 군 시설과 도시까지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은 이런 미사일에 핵 또는 화학·생물학 탄두를 장착할 수 있고, 사용 땐 우리는 엄청난 피해를 본다. 북한이 보유한 1000발가량의 미사일 가운데 대부분이 단·중거리 미사일이다. ‘만일의 사태’를 가정해 대비하는 게 안보의 기본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인식은 참으로 당혹스럽다. 김의겸 대변인은 NYT 보도에 대해 “기만이라고 하는 건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며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한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해당 기지를 폐기하는 게 의무조항인 어떤 협정을 맺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나서 북한의 주장을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북한의 단·중거리 미사일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인지, 우리 국민에게 전혀 위협이 아니라는 말로도 들린다. 반면에 미 국무부는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제거를 포함해 약속했다”며 김 대변인의 논평과 반대로 지적했다.

CSIS가 공개한 북한 미사일 기지는 한·미 정보당국이 이미 상세하게 파악해 군사대비 계획까지 갖추고 있는 시설들이다. 그런데도 CSIS가 새삼스레 이를 공개한 이유는 북한을 보는 미국 여론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북한과 이를 지켜보고만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나마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과 2차 정상회담이 준비돼 있다”는 어제 발표는 다행이다. 청와대는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서라도 북한을 맹목적으로 두둔할 게 아니라 엄중한 상황을 인식하고 시각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