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숙명여고뿐일까” 하는 불신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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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의혹이 경찰 수사에서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 교무부장이 쌍둥이 자녀에게 입학 후 총 6회의 시험 가운데 5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정황 증거들이 확보된 것이다. 이들 부녀는 모두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넘겨졌다. 교육 현장에서 벌어져선 안 될 어처구니없는 일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이 착잡하다.

숙명여고 사태는 그릇된 자식 사랑이 빚은 개인 일탈로만 넘길 일이 아니다. 유출 의혹이 제기된 이후 넉 달 가까이 논란이 이어지면서 내신에 대한 불신을 키운 사건인 까닭이다. 당장 수사 결과가 발표된 어제 학부모 단체들이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학교가 이 지경이라면 다른 학교는 상황이 어떨지 불 보듯 뻔하다”는 성명을 낸 것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수법과 정도의 차이일 뿐 올해도 전국 고교에서 여러 건의 내신 비리가 불거졌다. 부산에선 학생들이 시험지를 훔쳐낸 사실이 적발됐고, 광주에선 행정실장이 시험지를 빼내 학부모에게 건넨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경기도 고교에선 교사가 학생부 기록을 부풀린 사실이 드러났다.

내신은 대입 제도의 근간이다. 2018학년도 대입 정원의 76.2%를 뽑은 수시모집에서 학생부 위주 전형 비율이 86.2%나 됐을 정도다. 이런 내신이 불신받으면 공정한 입시가 뿌리째 흔들릴 건 자명하다. 오죽하면 어제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시험 출제부터 보관·채점 등 내신 관리 전 과정이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보안 강화 개선안을 교육청에 전달했을까. 교육 당국은 차제에 근본적인 내신 신뢰 회복 방안을 내놔야 한다. “편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관행이 이미 뿌리 깊게 만연해 있다”는 학부모들의 불신을 해소하지 않고는 공정한 입시는 요원하다. 공부에만 신경 쓰기도 버거운 학생들에게 ‘입시 불공정’ 걱정까지 하게 하는 건 더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