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집값 요동치는 여의도의 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커리어TF팀장

주정완 커리어TF팀장

“주위는 사막과 같은 모래땅이었고 버스도 들어오지 않아 절해고도와 다름없었다.”

1971년 10월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이삿짐을 푼 손정목 당시 서울시 기획관리관의 눈에 비친 여의도의 풍경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높은 12층짜리 아파트 24개 동, 1584가구의 입주자 모집은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청약통장도 필요 없이 선착순으로 입주자를 모집했지만 주거 환경이 워낙 좋지 않아 신청자가 드물었다. 분양가는 전용면적 157㎡(약 48평)짜리가 571만원으로 가장 비쌌다. 여의도 개발을 위한 공사는 68년 2월에 시작됐다.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혼신의 힘을 다한 야심작이었다.

그 후 50년, 여의도는 변신을 거듭했다. 한때 정치·금융·방송의 중심으로 통했지만 최근 수년 동안 여의도를 떠나는 기업이 잇따르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빈 사무실의 비율도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높은 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잠잠하던 여의도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박 시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여의도를 통째로 재개발하겠다”고 했다. “공원과 커뮤니티 공간을 보장하면서 일대 건물 높이를 높일 계획”이란 말도 덧붙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여의도 시범아파트 157㎡짜리는 17억4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14억원대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1년도 안 돼 3억원가량 뛰었다. 현재는 18억~19억원을 호가하는데 그나마도 매물이 드물다고 한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중앙정부와 긴밀한 협의가 이뤄져야 실현 가능성이 있다”며 박 시장의 구상에 제동을 걸고 나선 배경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지난 3일 시장관리 협의체를 구성해 첫 회의를 했다. “공동의 정책으로 시장에 일관된 메시지”를 강조하는 국토부와 “지역 불균형에 따른 양극화가 문제”라는 서울시는 상당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서울 시민들은 혼란스럽다. 여의도 재개발에는 ‘백년대계’는 아니라도 최소한 수십 년을 내다보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장관도 박 시장도 길어봐야 4년 안에 현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장기적·도시계획적 관점이 아니라 단기적·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것이다.

50년 전 여의도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김현옥 전 시장은 이미 고인이 됐다. 세상은 그를 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바꿔놓은 ‘여의도’라는 공간은 영원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50년 뒤 여의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주정완 커리어TF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