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발 카드 수수료 인하, 세금으로 메운다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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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최저임금 인상 폐해 경감 대책의 하나로 추진 중인 카드 수수료율 인하가 소비자에 대한 책임 전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 세금이 토대인 예산의 투입 가능성과 카드 연회비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나눠서 부담” #최종구 위원장 발언에 논란 점화 #카드 연회비 인상 가능성도 제기 #“소상공인 위하려다 경제 타격” 지적 #금융위 “구체적 세부안 확정 안돼”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영세·중소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을 0%대로 낮춘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위해 예산 투입 및 카드 연회비 인상 등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단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지난 19일 발언이다. 그는 “카드 수수료율 인하와 관련해 가맹점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사용자와 정부도 수수료 부담을 나눠서 지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신용카드 결제로 사용자가 가장 큰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정부도 세수 확대 등 편익을 받았다.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을 줄이더라도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카드사뿐 아니라 정부와 소비자도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동안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 과정에서 카드사들은 적지 않게 반발해왔다. 카드 수수료율은 원래 카드사와 가맹점 간 줄다리기를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카드사의 수수료 수입이 과도하다는 여론이 제기되면서 정부가 영세·중소 가맹점을 대상으로 한 우대 수수료율을 인하토록 하는 방향으로 개입해왔다. 2007년 이후 정부 주도로 수수료율은 9차례 낮아졌다.

카드사들은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정부 대책으로 또다시 카드 수수료율을 낮춰야 할 상황이 됐다. 지금은 매출 5억원 이상 일반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은 2% 안팎, 매출 3억∼5억원 중소 가맹점은 1.3%, 매출 3억원 이하인 영세 가맹점은 0.8%다. 금융위는 영세 가맹점 수수료율은 0% 초반대로, 중소 가맹점은 0%대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구

최종구

최 위원장의 ‘고통 분담’ 발언과 관련해 먼저 예산 투입 가능성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 과정에서의 직접적인 예산 투입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업계 등에서는 매출 세액공제 확대 등의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기한 금융위 중소금융과장은 “‘정부와 사용자, 가맹점, 카드사가 수수료 인하 부담을 고르게 분담한다’는 방향만 나왔고 구체적인 방안은 결정되지 않았다”라면서도 “(예산 투입 등)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은 검토한다고 할 수도 없고, 전혀 검토 안 한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카드 사용자가 떠안을 부담으로는 연회비 인상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객이 카드 사용 과정에서 부담하고 있는 비용이 연회비 정도이기 때문이다. 예산 투입과 연회비 인상이 실행된다면 소비자는 사실상 이중으로 부담을 지게 된다. 예산은 결국 소비자가 내는 세금으로 마련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용자에게 수수료 부담을 일부 전가하면 소비가 위축되고 오히려 가맹점 매출도 감소할 수 있다”며 “소상공인 200만~300만 명을 위해 카드를 사용하는 2200만 명에게 부담을 안기면 경기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예산 투입도 말이 안 된다. 정부도 신용카드의 혜택을 봤으니까 세금을 투입해서 카드사를 도와주겠다는 논리면 금융도 정부가 직접 하면 되지 민간에게 맡길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원죄’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부터 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을 2년간 30%나 올려놓고 소상공인이 힘들다고 하니 뒤늦게 전혀 다른 사안인 카드 수수료율을 손본다는 건 선후 관계가 잘못된 것”이며 “최소한 10.9%의 내년 최저임금 인상 결정은 철회하든지 재심의를 하는 게 결자해지 차원에서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숙·정용환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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