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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버린 알리바바, 이탈리아 등진 피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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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산업부 차장대우

손해용 산업부 차장대우

국제 자본시장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중국 ‘샤오미’의 홍콩 증시 상장이다. 9월로 예정된 샤오미의 상장 규모는 약 165억 달러(약 18조원). 2010년 AIA그룹(204억 달러) 이후 홍콩에 상장한 최대 기업이 될 전망이다.

홍콩 증권거래소가 이 ‘대어’를 잡기 위해 던진 ‘미끼’는 지난해 12월 새로 도입한 차등의결권이다. 최대주주나 경영진에 1주당 의결권을 1개보다 더 많이 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게 돕는다.

사실 홍콩은 차등의결권에 아픈 기억이 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해외에 상장하는 중국 기업은 두말할 것 없이 홍콩을 택했다. 하지만 2014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뉴욕 증시로 갔다. 마윈 회장이 소프트뱅크(28%)·야후(16%) 등보다 작은 7%의 지분으로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차등의결권을 허용한 뉴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 구글·페이스북은 창업자에게 1주당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창업자 워런 버핏은 1주당 의결권이 200개다. 덕분에 이들은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 가치를 위한 투자에 집중할 수 있다.

차등의결권은 미국·영국·일본은 물론 사회민주주의 복지모델의 원조 격인 스웨덴·덴마크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장점이 크다는 판단으로 새로 도입을 추진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대주주 특혜 시비와 소액주주 보호 목소리가 유달리 큰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국만 예외적인 현상은 자본시장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세계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 모시기’ 경쟁 중이다. 미국은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등을 내걸고 투자를 유치한다. 일본도 이런 인센티브로 자국 기업의 유턴을 이뤄냈다. 유럽 국가도 경쟁적으로 법인세 인하 대열에 뛰어들었다. 법인세 및 최저임금을 올리고, 대기업을 적폐로 낙인 찍는 한국과는 정반대의 움직임이다.

최근 황당한 ‘찌라시(정보지)’가 돌았다. 삼성전자가 미국으로 반도체 시설 및 연구개발(R&D) 부문을 이전하는 조건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영구 부지 임대와 전 직원의 영주권을 약속했다는 내용이다. 삼성전자가 원하지도 않는 일인 데다, 국내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순간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긴 이탈리아의 자동차 기업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지주회사 ‘엑소르’가 오버랩됐다. 네덜란드의 법인세가 낮은 데다 경영권 보호가 쉽다는 게 엑소르가 밝힌 이전 이유다. 엑소르처럼 국내 대기업들이 좀 더 기업하기 좋은 해외로 탈출하면 어찌나 하는 나의 걱정이 괜한 기우(杞憂)였으면 한다.

손해용 산업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