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여당이 안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당 정부’란 표현을 썼다. 당과 함께 정부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라 생각했다. 한 달 뒤. 민주당 지도부와 만찬(6월 9일)에선 “민주당 정부라 수차 얘기했듯 그에 걸맞게 함께하겠다”며 “특히 인사 문제, 당에서 추천하는 인사들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했다.

당·청은 공동운명체, 대통령 힘 있을 땐 잘 못 느껴 #‘민주당 정부’라 했던 취지에 맞게 당에 힘 실어줘야

다시 한 달 뒤인 요즘. 문재인 정부는 또렷이 보이는데 더불어민주당, 여당이 잘 안 보인다. 조각이 완료됐지만 당과 청와대가 인사를 놓고 긴요하게 논의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추미애 대표는 이낙연 총리 지명 소식을 발표 10분 전에야 통보받았다고 하지 않나.

여당도 국정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것 같지 않다. 당장 해야 할 일을 놓고 전전긍긍이다. 추가경정예산안과 정부조직법 처리 말이다. 두 사안은 청문회 정국이 겹치면서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를 제대로 하는 것도 없다. 탁현민 문제가 대표적이다. 당 지도부는 탁현민 여성 비하 논란에 대해 적극 나서지 않았다. 여성의원들이 청와대에 ‘부적절’ 의견을 전달해도 반응은 없다. 탁 행정관은 5일 문 대통령을 수행해 독일로 갔다.

‘여당 부재’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당 대표와 청와대의 껄그러운 관계는 그중 큰 요인이다. 추 대표는 청와대의 ‘홀대’에 속이 상해 있다고 한다. 국회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다 면담 30분 전에 취소 통보를 받은 기억이 있는 그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식 후 야당 대표들을 만나느라 시간이 없어 추 대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었다. 여당 대표로서 대통령과의 독대는 없었고 서로 통화도 잘 하는 것 같지 않다. 이건 청와대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추 대표가 청와대 인사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측면도 있다. 대선 전엔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소동’ 등으로 점수를 잃었고 최근엔 ‘사드 전쟁’ 발언이 논란을 불렀다. “홀대를 자초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소통은 원활한 편이다. 하지만 그에겐 재량권이 모자란단다. 정치가 현실이고 야당과 협상은 해야 하는데 뭔가 주고받을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너무 담백하고 원칙대로다. 예컨대 추경안 11조 중 1조~2조원은 원내대표가 깎을 수 있는 재량을 주면 협상이 수월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은 여당의 부재를 “쌍방과실”이라고 했다.

원활한 국정과 임기 중후반의 정국 안정을 위해선 여당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이라도 문 대통령이 움직이는 게 낫다. 당·청 관계를 바로잡자고 의원들이 나서면 시끄럽고 곤란한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당·청이 공동운명체란 말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그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지는 걸 여러 차례 봤다.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던 새누리당은 결국 박근혜 청와대만 바라보다 풍비박산이 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청 분리를 내세웠다. 당을 장악하지 않고 내버려뒀다. 하지만 이 실험은 당·청 갈등을 양산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자 의원들은 ‘나 살자’고 분열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쪼개지고 정권도 내줬다.

문 대통령은 정당정치가 몸에 밴 스타일이 아니다. 당장 북핵 문제가 급하고 일자리 창출과 군·검찰 개혁이 절실한 그에게 여당과의 관계 정립은 다음 차례일 수도 있다. 혹시 ‘자연스레 잘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건 아닌지. 게다가 임기 초에 와장창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그다. 하지만 힘이 있을 땐 당·청 관계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 어려움에 처해 봐야 절실해진다. 그런 만큼 힘이 있을 때 적절하게 힘을 나눠줘야 한다. 공동운명체란 말을 그냥 흘려들어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의 공언대로 “민주당 정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힘을 실어주면 된다. 결국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은 여당, 나아가 국회 없이 할 수 없다.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