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중국 전략 “김칫국부터 마시면 더 당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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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 [출처: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 [출처: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중 관계가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전화를 걸어오고, 일대일로 포럼에 공식 대표단을 파견하고, 곧 특사도 파견할 모양이다. 사드 문제도 곧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풍성'하다.

성균중국연구소·차이나랩 공동 세미나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한·중 관계 빠르게 호전 #전문가들은 “의욕만 앞세우지 말고 냉정을" 강조 #“사드 레이더 탐지 범위, 韓·中 협상 여지 있어 #美·中 대북 압력,한국도 발맞추며 기다리길 #사드 해결돼도, ‘승리주의적 관점’은 경계해야”

정말 풀리는 건가? 관계를 정상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새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12일 성균중국연구소가 주관하고 차이나랩이 후원한 '새 정부의 대중국 정책' 세미나의 주제였다.

참석 전문가들 역시 '양국이 사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너무 이른 낙관은 금물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대통령이 바뀐 것 빼고는, 사드를 둘러싼 기본 구도는 바뀐 게 없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지나친 의욕이 오히려 일을 망칠 수 있고, 이럴 때일수록 더 냉정해야 한다"며 침착한 대응을 주문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5일 오전(현지 시간) 중국 항저우 서호(西湖)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반도 사드 배치 이후 틀어진 상황을 두고 한우덕 차이나랩 대표는 “한·중 모두 서로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정부 간 소통이 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진 중앙포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5일 오전(현지 시간) 중국 항저우 서호(西湖)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반도 사드 배치 이후 틀어진 상황을 두고 한우덕 차이나랩 대표는 “한·중 모두 서로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정부 간 소통이 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진 중앙포토]

우선 양국 분위기가 급속하게 호전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대표의 말이다.

사드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 양국 지도자(박근혜-시진핑) 사이의 감정 대립으로 인해 확대된 측면이 강하다. 둘은 서로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정부 간 소통이 될 수 없었다. 대통령이 바뀐 지금, 최소한 그런 감정적 문제는 사라지게 됐다. 분위기가 좋아진 이유다.

그렇다면 사드를 둘러싼 양국의 '대결 구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드 문제가 어떻게 변형, 발전해 나갈지는 3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되게 되어있다. 첫째가 4월 초 열린 미-중 정상회담, 둘째는 5월 초 한국 대통령 선거, 셋째는 올가을 열릴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다.

첫 번째 요소인 4월 미-중 정상회담. 이문기 세종대 교수는 "사드 문제는 미-중 딜을 거치면서 '급박한 현안'에서 '하위(sub) 문제'로 수위가 낮아졌다"고 말한다. 열전(熱戰)에서 냉전(冷戰)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건 미-중 간 얘기고, 한-중 입장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사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취임선서식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취임선서식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이런 상황에서 두 번째 요소, 즉 한국 대선 단계에 이르렀다.

예상대로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앞에서 지적했듯 분위기는 좋다. 그러나 실질적인 문제 해결은 지금부터 시도해야 할 과제다. 중국의 사드 철회(또는 중단)요구는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동맹 미국과의 협약이 있기에 그렇다.

한-중 간 합의 여지는 있습니다. 양국 외교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로는 2000km에 이르는 X밴드레이더의 탐지 범위를 중국이 요구하는 데로 800km로 제한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해 보입니다. 기술적, 제도적 방법을 통해 중국을 탐지할 수 없도록 한정하자는 것입니다.

한-중 양국이 범위를 놓고 의견을 모은다면, 문제는 이제 미국으로 넘어간다. 미국이 과연 그 한-중의 합의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과연 잠재적 적국의 요구에 따라 자국 무기 시스템 성능을 제한할 리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설득시킬 대상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중 외교가에서 2000km에 이르는 사드 레이더 탐지거리를 중국이 요구하는 데로 800km로 제한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자료 중앙포토]

한·중 외교가에서 2000km에 이르는 사드 레이더 탐지거리를 중국이 요구하는 데로 800km로 제한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자료 중앙포토]

그게 지금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문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김흥규 아주대 교수(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나서지 마라. 미국과 중국이 대북한 압력을 가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압박을 서포트(지원)하면서 인내하고, 기다려라. 너무 우리가 주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보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덩샤오핑 어록에 나오는 '냉정하게 사태를 관찰하고(冷静观察), 진용을 굳건히 지켜라(稳住阵脚)'라는 말 그대로다.

김 교수는 "지금 우리는 자강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망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종속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며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다지고, 중국과 연합하는 '결미연중(結美聯中)'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성균중국연구소 소장)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드는 딜레마다. 이미 오디언스(관객, Audiance)비용이 너무 높아졌다. 딜레마는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관리가 해법이다. 해결의 계기를 찾고 관리해야 한다. '승리주의적 관점'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버티니까 중국이 결국 스스로 나서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프로그램 제재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장관급 회의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가운데는 회의장에 입장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유엔 안보리 장관급 회의는 이례적이다. [사진 중앙포토]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프로그램 제재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장관급 회의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가운데는 회의장에 입장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유엔 안보리 장관급 회의는 이례적이다. [사진 중앙포토]

이 교수는 "지금 우리 외교의 과제는 담대하게 보고, 경청해야 한다"며 "철학적 밑그림을 그리고,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외교 노력을 통해 한국과 중국이 레이더 범위에 합의를 하고, 이를 미국이 받아들인다면 한-중 관계는 수교 25주년 기념일(8월 24일) 이전에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배치 비용 문제를 제기한다면 더욱 꼬이게 된다. 그렇다면 3번째 요소인 올가을 중공 19차 당대회 상황을 봐야 한다.

2012년 11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8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시진핑 국가주석이 당 대회에서 총서기에 선출됐다. 올가을 제19차 대표대회가 열린다. [사진 신화사]

2012년 11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8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시진핑 국가주석이 당 대회에서 총서기에 선출됐다. 올가을 제19차 대표대회가 열린다. [사진 신화사]

시진핑 주석은 지금 군 개혁 작업에 나서고 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한 권력 공고화에 집중하고 있다. 사드에서 밀린다는 인상을 준다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그러기에 사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19차 당대회가 끝나기 전에는 중국 역시 열린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

한우덕 대표가 보는 사드 시나리오다.

이럴 경우 사드 문제는 올해 내내 '냉전'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 양국 경제 협력은 보이지 않게, 속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지금 우리 외교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그러면서도 원칙을 지켜내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리=차이나랩 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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