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여건 되면 美와 대화” 트럼프 향한 첫 공식반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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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호 01면

최선희 외무성 국장 밝혀, 북·미 대화 성사 여부 주목

북한이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해 미국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13일 “여건이 되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대화를 하겠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에서 열린 북·미 간 1.5트랙(반관반민) 대화를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중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의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최 국장은 “노르웨이에서 토머스 피커링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만났으며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얘기하려 한다”며 주로 북·미 관계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고 전했다.

트럼프 “김정은 만날 것” #발언 후 나온 반응 관심 #트럼프 NBC 인터뷰선 #“문재인 대통령 북과 대화 #특정한 상황서 이뤄져야”

최 국장의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상황이 되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영광스럽게 만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움직임과 북·미 1.5트랙 대화 내용에 따라선 북·미 직접 대화가 전격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의 외교 브레인’이라 불리는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나흘밖에 안 됐는데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너무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어쨌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북한이 대화라는 단어를 계속 쓰고 있는 건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외교안보 참모였던 최종건 연세대 교수도 “한·미 양국이 세밀한 공조를 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로드맵을 미국에 잘 설명하면 된다”며 “우리가 미국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 관계가 아닌 만큼 대한민국 주도로 북한과 대화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 채널이 본격 가동될 경우 한국 정부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긴밀한 한·미 공조를 위해선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미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당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우선 한·미 동맹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협조한 뒤 남북 문제를 푸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에 좀 더 열려 있다”며 “나는 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지만 특정한 상황(certain circumstances)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러나 ‘특정한 상황’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냐는 질문에 “한두 달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보고 더 좋은 답변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의 드라이브를 걸기 전에 미국과 협의하길 바라는 것”이라며 “미국은 ‘선(先)압박 후(後)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한국이 대화 카드를 먼저 꺼내면 엇박자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종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의도와 대화 의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양국 대통령이 큰 틀에서 대화의 필요성이라는 공통의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제재 등의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대화도 병행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대해 최선희 국장은 ‘남한 정부와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느냐. 새 정부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봐야지요”라고만 짤막하게 답하고는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서울=염지현·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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