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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 공감과 경청의 약속을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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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영익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영익사회2부 기자

한영익사회2부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큰 사건·사고가 많았다. 임기 시작을 18대 대선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과 함께 했다. ‘정윤회 문건’ 유출, ‘성완종 리스트’ 발견과 같은 정치적 사건 외에 세월호 참사, 칠곡 계모 학대, 강남역 살인 등 일반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정부를 종말로 이끌었다.

사건·사고는 어느 정부에서나 있었고, 앞으로도 어느 정도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공감과 경청이라는 덕목을 무시해 일을 키웠다.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도 못 막았다.

“갇혀 있어요?” 세월호 참사 7시간 뒤 중앙재난대책본부를 찾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던진 질문은 많은 국민을 당황케 했다. 관료들이 하는 보고를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소극적 경청’을 했거나 그마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의 정윤회 문건 사건 때도 국민들의 의심에 공감하지 않고 부정적 여론 차단에만 급급했다. ‘비선 실세가 존재한다’는 폭로가 나오자 청와대는 유출자 색출로 대응했다. 그 결과가 최순실 게이트라는 비극이다.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하다’는 정현종 시인의 시구(시 ‘경청’에서)처럼 박 전 대통령은 파면 대통령이라는 멍에를 지게 됐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근혜 정권에서 직간접적으로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새 대통령이 국민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여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아동을 학대한 부모를 처벌하는 것보다 아이의 삶을 돌보는 정책을 만들어 달라”(권태훈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 “책임질 줄 알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소중히 해 달라”(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이금희씨), “장애인 학대 처벌을 강화해 달라”(허주현 전남장애인인권센터 소장) 등의 의견이 나왔다. 아직 새 대통령이 결정되기 전인 9일 낮에 한 이야기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거의 매번 참가했다는 대학생 김건준씨는 “새 대통령은 잘 듣고 잘 소통하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순히 관료들의 보고나 얘기를 잘 들으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듣는’ 대통령에 목말라 있다.

“대통령 후보 가운데 누구도 진심을 다해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묻자 최승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가족연대 대표가 한 말이다. 대선주자들이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관심을 보였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진심 어린 공감이 전달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사고 피해자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나라, 그래서 국민들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나라, 새 대통령이 만들어야 할 새 대한민국이다.

한영익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