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세종청사에서 만난 노란 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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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경제부 기자

박진석경제부 기자

지난주 초의 어느 날, 이른 점심을 끝내고 정부세종청사를 나섰다. 봄꽃이 만발한 양춘가절이라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가슴이 활짝 펴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노란색의 물결이 보였다. 가까이 가봤다. 청사 인근에 있는 양지고등학교 담장에 노란색 우산들이 연이어 꽂혀 있었다. 줄잡아 수십 개는 돼 보였다. 그리고 ‘20140416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세월호 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학생들이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정작 사고에 책임감을 느껴야 할 일부 어른들은 그 말 한마디를 내놓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어느새 3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푸르고 화려한 4월과는 어울리지 않는 슬픔이다. 그나마 이번 3주기는 조금 낫다고 볼 수 있을까. 세월호가 천신만고 끝에 인양돼 목포신항 부두 한편에 노쇠한 몸을 누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소소한 문제들과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해양수산부와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는 비교적 양호하게 세월호를 육지 위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진짜 난관은 이제부터다. 논란을 무릅쓰고 거액을 투입해 세월호를 끌어올린 이유,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9명의 미수습자 수색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상황이라서다.

이 시점에서 사회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이 또다시 감지된다. 인터넷상에는 수색 방식과 시점에 대해 의견을 내놓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을 비난하는 댓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세월호가 ‘신성불가침’의 존재는 아니다. 불만을 입 밖으로 내뱉을 자유도 보장돼 있다. 다른 사고 희생자들과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의견들에는 귀 기울여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호 인양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가 아니다. 이미 논쟁 끝에 인양을 결정했고, 그 결과물을 우리 모두가 보고 있다. 지금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쓴소리를 해서 얻을 것이 무엇일까. 3년을 속울음 속에서 힘겹게 넘기고 겨우 자식의 흔적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 한 조각을 갖게 된 이들이다.

이철조 해수부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장은 지난달 말 세월호의 목포신항 도착 직후 “가족에게 미수습자를 돌려드린다는 취지를 늘 염두에 두겠다”고 말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이제는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슬픈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국민도 조용히 지켜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 속에서나마 그들에게 노란 우산을 씌워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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