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고박’은 ‘고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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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세월호 침몰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 것이 고박 불량이다. 배 안에 있는 자동차나 화물들이 제대로 고박되지 않아 이것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침몰하는 원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일반인이 처음 접한 단어가 ‘고박’이다.

3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온 세월호는 재킹바지선에 고박하는 작업을 거쳐 이동한 뒤 반잠수식 선박으로 무사히 올려졌다. 반잠수식 선박은 다시 고박 작업 등을 한 다음 목포신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처럼 ‘고박’이란 단어를 계속해 접하게 되지만 그럴 때마다 생소하게 들린다.

‘고박’은 우리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일본 사전에 나온다. 일본에서는 단단히 묶는다는 뜻으로 ‘고박(固縛, こばく)’이라는 단어가 쓰인다. 중국 한자어에도 없는 단어인 것을 보면 ‘고박’은 일본에서 만든 용어로 생각된다. 이러한 단어를 일본식 한자어라 부른다. 아마도 우리가 법률을 만들면서 일본 법률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들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부에서 펴낸 행정용어순화편람(1992)은 ‘고박(固縛)’을 ‘뱃짐묶기’나 ‘화물묶기’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고박’의 다양한 경우에 적용하기 어렵다. 우리 식으로는 ‘고정(固定)’이란 단어가 있다. 한곳에 꼭 붙어 있게 한다는 뜻이다. ‘바지선에 고정하는 작업’에서 보듯 움직이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고박’이나 ‘고정’이나 결과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다.

물론 법률이나 행정용어로 이미 나와 있는 것이라 아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고정’ 등 쉬운 말로 바꾸어 써도 되는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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