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제 연배이신 듯한데’라는 말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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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제 연배이신 듯한데 말씀 낮추십시오!” 동호회 등의 술자리에서 흔히 접하는 장면이다. 질세라 옆자리의 다른 이도 끼어든다. “우리보다 연배이시니 한 잔 먼저 올리겠습니다.” 말을 건넨 이들은 30대 초반, 상대는 50대 후반이다. 두 사람의 말을 상대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본의 아니게 이들은 큰 결례를 범했다. ‘연배’의 뜻을 잘 모르고 쓴 탓이다. ‘연배’를 선배나 윗사람의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제 연배이신 듯한데~”는 의도와 달리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라는 말이 된다. 아버지뻘 되는 이가 존댓말을 하는 게 불편했다면 “제 아버지 연배이신 듯한데~”라고 해야 의도에 부합한다. “우리보다 연배이시니~”도 어법에 안 맞는다. ‘연배’를 ‘연장자’ 또는 ‘선배’로 고쳐야 어색하지 않다.

연배는 ‘어떤 범위에 속하는 나이 또는 그런 나이의 사람’을 의미한다. 주로 성인에 대하여 이른다. ‘일정한 정도에 도달한 나이 또는 그런 나이의 사람’에서 2016년 11월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가 수정됐다. “그와는 같은 연배라서 그런지 말이 잘 통한다” “내 딸이 살아 있었다면 당신 연배요”와 같이 사용할 수 있다. ‘연배’ 앞에 어떤 연령대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말이 와야 한다.

연배를 ‘연세’처럼 나이의 높임말로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연배가 있는 분들은 창경궁 하면 창경원이 떠오를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연배가 드신 분들께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와 같이 사용하는 경우다. ‘연배’를 모두 ‘연세’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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