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격차를 ‘벌일까’ ‘벌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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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대선이 3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며 각종 여론조사와 그에 대한 분석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체면이 구겨지긴 했지만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민심을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기에 여론조사 결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와 격차는 각각 ‘벌이는’ 것일까, ‘벌리는’ 것일까.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벌린 여론조사는 A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B는 이날 경선에서 승리하며 2, 3위 후보와의 격차를 더욱 벌였다/벌렸다” 등과 같이 ‘벌이다’인지 ‘벌리다’인지 헷갈린다.

‘벌이다’는 일을 시작하거나 펼쳐 놓는다는 뜻이다. “그는 각종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었다” 등처럼 쓸 수 있다. “장기판을 벌이다” 등과 같이 놀음판 등을 차려 놓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책상 위에 책을 어지럽게 벌여 놓았다”에서처럼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벌리다’는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다”에서와 같이 둘 사이를 넓게 하거나 멀게 하는 경우 사용한다. “밤송이를 벌리고 알밤을 꺼냈다”에서처럼 껍질 등을 열어 젖혀 속의 것을 드러낼 때, “자루를 벌렸다”에서와 같이 우므러진 것을 펴지거나 열리게 할 때도 쓴다

따라서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는 A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B는 이날 경선에서 승리하며 2, 3위 후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고 해야 바르다. 간격을 멀어지게 한다는 의미가 있을 때는 ‘벌리다’를 쓴다고 기억하면 헷갈리지 않을 수 있다.

김현정 기자 nom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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